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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때문에 내가 사람이 됐습니다.”

기사승인 2021.12.06  19:41:43

심자득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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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글 목사 1주기 "한국의 민주주의, 노동자 인권, 한반도평화통일에 족적을 남기셨다" 추모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 선교사,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그리고 한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된 최초의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의 추모 1주기(2021. 11. 15)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6일 오후 2시 광화문의 감리회관 본부교회에서 모여 추모식을 가졌다.

   
▲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목사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목사는 192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광부들의 마을인 피트케린 출신이다. 메리빌 대학과 듀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국제노동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미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20년간 한국 도시산업선교의 선구자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법에 중점을 둔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산업관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기여했으며,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있을 때 군사재판에서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인혁당사건 8명의 ‘수호자 역할’을 하다가 1974년 12월 강제 추방을 당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에모리 대학교 켄들러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연합감리교회 사회경제정의 담당 총무와 일리노이 교회연합회의 총무직을 수행했다. 1984년 이후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였고 북한은 1995년에 한번 방문하였다. 자녀 4명은 모두 인천에서 성장했다. 아내 도로시 여사와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은퇴 커뮤니티에서 살다가 2020년 11월 15일 91세로 소천했다. 그의 죽음 직전인 2020년 6·10민주항쟁기념식 때, 국민훈장(민주주의발전유공포상)을 받았다.

 

   
▲ 설교 : 이철 감독회장

 

추모식은 1부 추모예배, 2부 추모 및 헌정의 순서로 진행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에큐메니컬위원회가 주관한 추모식에 이철 감독회장을 비롯해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미연합감리회세계선교국(GBGM),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사)기독교민주화운동, 한기독교교회협의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9평화통일재단, NCCK인권센터, 이정숙 여사(인혁당 희생자 이수병 선생의 아내), 최영희 의원, 신앙과지성사,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전남병 목사(에큐메니컬위원회 서기)의 사회로 드려진 추모예배는 오일영 총무(감리회본부 선교국)의 기도, 이철 감독회장의 설교, 추모영상, 유홍근 목사(선교국 사회농어촌환경부장)의 인사, 신경하 감독(전 감독회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고 2부 추모 및 헌정의 시간에는 조진호 목사의 특별찬양(반주 배진교 선교사), 안재웅 목사(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이홍정 총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최영희 전 의원(인천도시산업선교회 전 실무자), 이창훈 사료실장(4·9통일평화재단), 정진우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부이사장) 등의 추모사가 있은 후 조지 오글을 추모하는 책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신앙과지성사)’ 헌정식을 가졌다.

 

   
 

이철 감독회장은 추모예식에서 ‘한 알의 밀알’을 제목으로 설교를 전하면서 “조지 오글 목사님은 위기 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여 부딪혔던 분이고 목사님이 헌신하고 희생했던 대상은 갚을 길 없는 약자들이었다. 그것이 참 신앙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어 그렇게 사신 것”이라며 “그렇게 복음을 삶으로 사셨던 분을 오늘 우리가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당연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1주기의 의미를 되짚었다.

영상으로 추모의 말을 남긴 하종강 교수(성공회대)는 조지 오글 목사와의 첫 만남에 대해 “숭의교회에 소속하셨던 오글 목사님을 중학생 때 뵈었는데 한국말을 참 잘했고 착하고 진지하게 느껴지도록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또 하교수는 “우리 집 근처에 사셨는데 거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다. 평민이 사는 보통집 중에서도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숙소를 마련하여 사셨던 것이다. 산업선교회는 선교대상과 같은 수준에서 생활하고 활동한다는 원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 기억영상 : 조화순 목사

조화순 목사도 영상으로 추모의 말을 전했다. 조목사는 “조지 오글 목사가 내 인생을 바꿨다”는 한마디로 압축해 조지 오글 목사에게 받은 영향을 설명했다. 목사안수를 받은 34살 때 오글 목사님이 사람만들겠다며 자신을 공장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몸으로 노동을 체험케 하는 것이 목사님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내가 위장취업 1호가 됐다”고 했다. 조목사는 “그 때부터 가난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조지 오글 목사의 행색에 대해 “옷은 한 벌 밖에 없고 단이 다 뜯겨져 있고 양말 뒷꿈치는 뚫려 있고 도시락엔 깍두기 밖에 없었다. 예수 다음에 오명걸 목사다. 이런 스승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돌아보며 “고맙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내가 사람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 추모사 : 안재웅 목사(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인 안재웅 목사는 “조지 오글 목사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인데 한국을 찾았던 것을 보면 이분은 한국이 산업화 될 것이고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증언하기 쉽지 않았을 시기인데 그 일로 추방당한 후 에모리에 가서 교수 생활을 했는데 실천신학적 측면에서 일목요연하게 글을 쓰고 강의를 했다. 또 초지일관 목사로서 UMC에서 사회선교에서 열심히 일했다.”면서 “우리도 조지오글 목사의 뒤를 따라서 성실히 우리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고 추모사를 남겼다.

 

   
▲ 추모사 : 이홍정 총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는 조지 오글 목사가 한국에서 보여 준 삶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조지 오글 목사님은 냉전과 분단의 족쇄를 찬 채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로 신음하며 고통받는 한반도에서 사회적 약자를 환대하며 그들과 동행하는 새 계명의 길을 걸으셨다. 이승만 친미독재, 박정희 반공군사독재정권이 추구하는 정치권력체제의 수립과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의 목표아래 다른 모든 가치들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시절에 소외와 억압의 높은 파고를 견디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민중들의 생명의 발아를 위해 온 몸을 던지셨던 분이고 고난의 행군을 하던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라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대로 오 목사님께서 민중을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며, 고난당하는 이들과 연대하여 새 계명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선교현장에 참여하고, 그의 길을 따를 것을 다짐한다”라고 추모사를 했다.

 

   
▲ 추모사 : 최영희 전 의원(인천도시산업선교회 전 실무자)

최영희 민주당 전 의원(인천도시산업선교회 전 실무자)은 산업선교회의 막내로서 에큐메니컬 전국 심포지엄, 부평수출공단 반도상사 노동조합 결성, 파업배후와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명수배 당한 일 등 노동운동을 하며 겪은 경험을 조지 오글 목사와 연결해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최 전 의원은 “공장에 가서 예수를 찾아와라, 빈민촌에 가서 예수를 찾아 와라고 하셨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는 예수가 안보였다. 하지만 그분의 행동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게는 오명걸 목사님이 예수인 것 같았다.”고 그를 회상했다.

 

   
▲ 추모사 : 이창훈 사료실장(4·9통일평화재단)

4·9통일평화재단의 이창훈 사료실장은 “인혁당을 숨겨주면 가족까지 잡혀가던 시설에 조지 오글 목사님 추방당하면서까지 인혁당 동지, 민청학련 동지들을 구하려 했던 한국의 선한 사마리아인이셨다.”고 그의 선한 삶을 조명하고 “조지 오글 목사님의 유지가 우리 사회에 잘 반영이 돼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희생당하신 분들이 올바로 대접받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9통일평화재단은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다 간첩으로 몰린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임이 밝혀지며 2007년 무죄를 받자 사형을 당한 이들의 유가족이 재산을 출연해 2008년 설립하여 민주, 통일, 평화,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재단이다.

 

   
▲ 추모사 : 정진우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부이사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부이사장인 정진우 목사는 생전의 조지 오글 목사님을 가장 최근 만난 한국인일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파킨슨 병으로 힘들어 하시면서도 한국말로 한국의 통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셨고 한반도 평화정제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시기도 했다.”고 임종전까지 꺼지지 않았던 그의 한국 사랑을 전했다. 이어 “목사님을 추모하며 인간이 만든 장벽을 넘는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새로운 물음과 도전 앞에 옷깃을 여민다. 목사님 보여주신 한국 사랑을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나눈다.”며 그의 영정 앞에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 신앙과지성사 대표 최병천 장로가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을 그의 영정앞에 헌정했다

추모사 후 조지 오글 목사를 추모하며 엮은 책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신앙과지성사)’ 헌정식을 이어갔다.

공동저자로 참여한 송병구 목사(색동교회, 고난함께 이사장)는 이 책에 대해 “기독교대한감리회, 연합감리교회세계선교국,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이 공동 기획했고 신앙과지성사의 수고로 만들어 졌다.”고 소개하고 “조지 오글 목사님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가장 큰 진실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국 역사와 민족 민중의 진솔한 목소리들을 가슴 뜨겁게 간직하시고 기록해 주신 조지 오글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헌정한다.”고 헌정사를 대신 했다.

‘20세기 한반도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은 인혁당 조작사건을 고발한 그 예언자적인 삶을 함께 기리며 칭송하고자 그의 추모 1주기에 맞추어 출판됐다.

이 책을 출판한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신 오글 목사님을 만날 수 있다. 1부로 감리회의 네 기관이 중심이 되어 추모의 장을 마련했고, 조지 오글이 지내온 삶의 과정을 화보형식으로 엮었다. 제2부는 조지 오글이 가장 사랑했던 명저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를 수록했다. 이는 ‘20세기 한반도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특유의 소설 형식을 빌어 집필했다. 오글 목사님은 죽기직전까지 부인에게 이 책을 읽어달라며 외로움을 달랬다. 특별히 한국인 독자들에게 보낸 도로시 사모님의 편지가 감동이다. 종전선언과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눈물로 비는 미국인으로서의 자책감이 인상적”이라고 소개했다.

 

 

   
▲ 추모예배 사회 : 전남병 목사(에큐메니컬위원회 서기)
   
▲ 기도 : 일영 총무(감리회본부 선교국)
   
▲ 설교 : 이철 감독회장
   
 
   
 
   
 
   
 
   
▲ 인사 : 유홍근 목사(선교국 사회농어촌환경부장)
   
▲ 축도 : 신경하 감독(전 감독회장)

 

   
▲ 2부 추모 및 헌정의 시간 사회 : 이광섭 목사(에큐메니컬위원장)
   
▲ 특별찬양 : 조진호 목사(기타반주 배진교 선교사),
   
▲ 추모사
   
▲ 오글 목사를 추모하며 엮은 책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헌정의 의미에 대해 공동필자 송병구 목사(고난한께 이사장)이 설명했다.
   
▲ 신앙과지성사 대표 최병천 장로
   
▲ 신앙과지성사 대표 최병천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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