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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넘어 온 편지

기사승인 2022.01.16  23:50:28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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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넘어 온 편지>,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편, 하루의 산책, 2019

‘고난 함께’가 어느새 33살을 맞았다. 정식 이름은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고난모임)이다. 1988년 모임을 빚는 과정에서 처음 몇 달간 감리교인이란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크든 작든 적어도 ‘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나누자’란 선한 의도에서였다. 그러다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추게 될까봐 이름을 약간 비트니 적당히 모호해졌다. 그래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가 되었다.

한낱 임의 단체가 30여 년을 한결같이 존재 증명해 온 것은 그 모임에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 행복한 일이다. 동창 모임도, 이해관계도 아닌 우리 사회의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둔 단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깊이 개입할수록 무얼 얻기보다 나눌 일도 늘고 번거롭기에 모임이 연륜만큼 번창하지도 못했다. 이름 내는 것을 새털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모인 터라 명예랄 것도 없다. 그럼에도 가볍지 않는 무게감을 얻었다.

30년 이상 내력이 세월로 쌓이면서 고난모임이 한 일도 제법 발길에 차인다. 그중 하나가 감옥에서 온 편지들이다. 30년 세월만큼 무너미를 이룬 옥중편지들은 인간의 따듯함을 추구한 고난운동의 사실증명이 되었다. 제법 부피감이 커져서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기록물 보존과 이용에 대한 프로젝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고난모임 실무자들은 소소한 권리에 대한 무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분단 감옥의 담장을 오간 편지들은 언젠가는 그 담장을 무너뜨릴 듯하다. 지난 30년의 시간이 담장의 높이를 어느 정도 낮춘 것을 보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얼마나 두렵고 답답한 벽이었던가? 그런데 그 높고 아득한 담장을 마치 종이비행기 날리듯 편지를 쓰고, 또 답장을 쓰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에 이만큼 진전을 이룬 것이다.

고난모임은 30년을 맞던 2019년, 편지만의 역사를 뽑아 한 권의 책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이름은 <담장을 넘어 온 편지>이다. 높은 벽을 사이에 두고 담장 안으로 보내고, 또 넘어 온 편지들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지만 두려움과 용기, 외로움과 희망은 공통된 정서였다. 그 내밀한 감정들은 지극히 양심적 호소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사정을 귀담아 들어주고, 아픔에 연민하며, 아우성에 동참하는 고난모임은 친구처럼 곁을 지켰다.

30년 전부터 고난모임은 기꺼이 그 역할을 떠맡았다. 처음 활동의 실마리를 푼 1988년은 숱한 양심수를 양산하던 불행한 때였다. 그 중 양심선언 후 수배 중인 전투경찰 한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그가 SOS를 보내왔다. 한솥밥을 먹던 후배 신학생이었지만, 수배 중인 그를 돕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일일찻집을 열면서 그의 존재감을 희석화하려고 두루 감리교인 중에서 양심수를 찾았더니 놀랍게도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다수였다. 그들 중에 장로, 집사로서 조작된 간첩도 있었다. 시절이 죄인이었다.

고난모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니만큼 우리 시대의 여러 고난들 중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들을 돕자”고 자처한 배경이다. 당시 가장 위험인물들인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과 한 동네 사람이 되었는데, 그들은 1989년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면서 담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결심하기 전에 이미 피치 못할 상황이 되었다.

이를 이념 문제가 아닌 사람 문제로 관심사를 넓힘으로써 고난모임다운 인권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양심수들은 모두 동기와 처지가 달랐지만, 어쨌든 남북한의 적대적 대립에서 파열된 분단시대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양심수 편지결연과 석방 장기수노인의 효도나들이는 30년 동안 쉼 없이 계속된 휴먼 장수프로그램이 되었다. 어린 고난모임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문제였지만, 마음먹으면 못해 낼 이유도 없었다.

돌아보면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다 그렇듯, 인권운동과 통일과정에도 감동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념의 가면을 벗고 인간의 얼굴을 회복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암흑시대를 막막하게 겪어 온 국가적 희생자들 앞에서 이젠 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불행을 외면했던 이전의 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담장 넘어 온 편지>를 묶어 다시 교회의 담장 안으로 보내는 사연이다.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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