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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기사승인 2022.01.17  23:38:50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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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신념을 지키고 그에 따라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정당한 폭력과 정당한 전쟁에 대한 질문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과연 정당한 폭력이 가능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교회의 역사 초기에 이미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당한 전쟁(just war) 또는 정의로운 전쟁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것을 평화를 이루는 데 목적과 의도가 있는 전쟁으로 정의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당한 전쟁의 세 가지 조건을 말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의 권위, 정의로운 명분, 올바른 의도였다. 종교개혁자 루터 역시 비폭력에 관한 예수님의 윤리는 전쟁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반대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당한 전쟁을 인정했던 루터의 시대는 30년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 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역시 그리스도교 국가들 간의 전쟁이었으며, 전쟁의 참여한 모든 나라들은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고 각기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섰다.

이와는 달리 ‘정의로운 폭력’ 자체를 형용모순으로 보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 5:39) 과연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향한 모든 악한 폭력에 맞서 싸우지 않고 그대로 폭력을 당하셨다. 모든 폭력은 그 자체로 악하기에 그 어떤 폭력의 사용도 용납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의 행사까지도 용납할 수 없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상설교에 등장한 예수님의 이런 윤리를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윤리로 여겼으나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던 사람들이 역사에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하트마 간디였다. 그는 영국 유학 당시 알게 된 예수님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감행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군중들과 함께 글자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흑인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의 힘을 역사 속에서 증명해냈다.

하지만 전쟁은 식민지 독립투쟁이나 인권투쟁과는 맥락이 다르다. 조국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으려 침범한 나라에게 아무 저항 없이 살해당하고 약탈당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세례파나 퀘이커교도 같은 극단적 평화주의자들이 그러했고, 이 땅에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살상무기를 손에 드는 것조차 거부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죽을지언정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화 《핵소 고지》는 비슷한 신념을 가진 한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실제 이야기이다. 데스몬드 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양심적 집총거부자인 채로 의무병으로 군에 자원입대한다. 하지만 그 누가 집총을 거부하는 전우를 옆에 둘 수 있을까? 지휘관도 동료들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지켜줘야 하는 전쟁터에서, 적을 사살하여 전우를 보호해야 할 전쟁터에서 자신의 신념 때문에 총을 들지 않겠다는 생각은 알량한 자기의나 자기만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오해와 편견을 뚫고 도스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나간다. 그리고 치열한 핵소 고지의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 양심적 집총거부자 최초로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던 데스몬드 도스의 놀라운 실화는 신념과 신앙에 관한, 폭력과 전쟁에 관한 많은 고민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마지막 실제 인터뷰 장면에서 데스몬드의 동생 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념을 갖고 있다는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신념은 바로 자신이니까.” 신념을 지키고 그에 따라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데스몬드의 신앙과 삶은 이 질문의 해답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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