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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거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요한계시록 8장 1절~6절

기사승인 2022.06.24  18:43:39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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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거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요한계시록 8장 1절~6절

 

1. 어린 양이 일곱 번째 인을 떼시다

 

① (1절)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듯,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사건을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듯 심판은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건이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이 문장은 ‘어린 양’이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본래는 ‘어린 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다.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위임 받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일곱 인의 재앙, 곧 심판과 구원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개인의 죽음, 세상의 종말,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에도 주어를 생략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눈앞에 벌어지는 재난을 넘어 재난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안목이 요구된다. 또한 심판 속에 숨어 있는 구원을 볼 수 있어야 된다.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더불어 구원의 양면성을 증거하고 있다.

▶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삼대 칠중 재앙 가운데 첫 번째 일곱 인의 재앙에서 두 번째인 일곱 나팔의 재앙으로 연결되는 막간이다. 주님께서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세 번에 걸쳐 점진적이고 점층적으로 심판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은 징계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책망으로 사는 길을 열어 주길 원하신다. 심판의 본심은 단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에 이르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완고함으로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 일류는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일말의 회개나 자성과 성찰도 없었다.

 

② (2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하나님 곁에서 보위하던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의 재앙을 수행하는 광경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수행하는 영적 존재다. 천사가 구원과 기적의 역할뿐만 아니라 심판과 재앙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일곱 천사는 일곱 나팔의 재앙을 위임받은 존재일 뿐이지 심판의 주체가 아니다. 일곱 천사가 행하는 일곱 나팔의 재앙만 보고 재앙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심판과 구원을 주관자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그래야 전대미문의 재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뚜렷한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다.

 

2. 금향로, 성도의 기도들

 

① (3절~4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일곱 인의 재앙에서 일곱 나팔의 재앙으로 넘어가는 막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금향로를 가진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해서 성도의 기도들을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올려 드리는 광경이다. 금향로에는 성도의 기도들이 담겨 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금향로에 담긴 기도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10)” 이 대목을 메시지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어린양이 다섯 번째 봉인을 떼시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느라 죽임당한 이들의 영혼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제단 아래 모여서 큰소리로 기도하며 외쳤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합니까? 거룩하고 참되신, 능력의 하나님! 얼마나 더 기다려야 주님이 나서서 우리를 죽인 자들에게 앙갚음해 주시겠습니까?” 본문은 위와 같은 성도들의 의문에 대한 응답이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성도의 기도들을 고이 담아 보좌 앞 금단에 드림으로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었음을 증거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시고 되갚아주신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눅 18:1~8)”

▶ 일곱 나팔의 재앙이 죽임당한 순교자들의 기도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일곱 나팔의 재앙은 성도의 애타는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런 맥락해서 보면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사건이며 누가 세상의 주권자인지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다. 마치 애굽 왕 바로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처럼 세상에서 왕 노릇 하던 자들에게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과정이다. 죽음의 순간,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 코로나 대유행으로 세상을 주름잡던 헛된 신화들과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는 확실한 표적이다.

 

3. 예비된 심판, 재난은 우연이 아닌 섭리다!

 

① (5절)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 금제단과 금향로는 본래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용도로 만든 거룩한 도구다. 거룩한 제단과 향로가 도리어 심판의 도구로 바뀐 것이다. 축복이 변하여 저주가 되고, 복이 도리어 화로 변했다. 이처럼 향로에서 불이 나와 죽임을 당하는 심판이 구약성경에도 등장한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인을 소멸하였더라(민 16:35)” 일곱 나팔의 재앙, 나답과 아비후, 고라와 이백 오십인의 족장을 심판하시는 서로 다른 사건 속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교만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을 멸시한 이들을 향로에서 나온 불로 멸하신 것처럼 교만으로 성도를 죽인 땅에 거하는 자들을 멸하신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대재앙의 본질도 동일하다. 인류의 오만과 탐욕에 대한 심판이다.

 

② (6절) “일곱 나팔 가지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 ‘예비하더라’는 말씀은 단순히 준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곱 나팔의 재앙이 예고되고 예견된 재앙이며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뜻이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께서 친히 예고하신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다. 과학자들은 코로나 대유행을 우연이 아닌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부른 ‘인류를 향한 대자연의 역습’이라고 해석한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자초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멸종을 예고하는 코앞에 닥친 위기와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둘만 꼽으라면 ‘기후위기’와 ‘핵전쟁’으로 인한 자멸이다.

▶ ‘향로를 땅에 쏟으매’라는 구절에 핵심이 있다. 심판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적시하기 때문이다.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에 자주 언급되는 ‘땅에 거하는 자들(계 13:8, 17:8)’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하나이까(계 6:10)”,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계 8:13).” 심판의 대상인 ‘땅에 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땅 만보고 사는 인생, 땅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 물질이나 부동산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 땅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표현이 속에 담긴 의미는, ‘하늘에 거하는 자들’과 대조할 때 더 분명해진다.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다. 그리스도인은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에 속한 자로 사는 사람이다. 천국 백성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며 하늘에 속한 자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어디 소속인가? ‘땅에 소속된 자인가 아니면 하늘에 소속된 자인가!’ 우리의 소속은 그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판가름 난다. 그 날은 세상이 끝나는 종말의 날을 넘어 삶에서 경험하는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위기의 순간도 포함한다.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그 날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멸망의 날이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 그 날은, 고대하던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고 바라던 천국에 올라가는 구원의 날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주제인 ‘삼대칠중재앙’, 곧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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