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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해”

기사승인 2022.09.22  00:19:18

김민호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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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해”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2020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진짜 권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회적인 대화를 어린이도 사양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194)

  어린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여성만큼 약자로 취급당하는 존재가 바로 아동이기 때문이다. 약자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은 어린이들을 우습게 여긴다. 함부로 반말하고 하대하고 명령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아이들은 학습한다, 자기들은 그렇게 괄시당해도 괜찮은 존재구나 하고.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45)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이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유단자와 대련을 하다가 맞고 쓰러졌다. 아이들의 얼굴은 공포에 하얗게 질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는 연출된 것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몰래카메라였다. 덕분에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제작자도, 성인 출연자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모두가 원하는 장면이 그려졌으니 그걸로 잘 된 것일까. 아니다. 어린이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기만행위 자체도 그렇고, 아이들을 놀림의 대상으로 사물화된 것도 그렇고, 결코 작지 않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아이들의 모습을 감상하고 재밋거리로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린이라는 세계>는 저자 김소영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화들을 바탕으로 쓴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독서교실에서 기발한 착상들을 풀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순히 재미나 가독성 부분 뿐만 아니라 탄탄한 내용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서로 몸이 달라도 존중하자”는 정답을 요구했을 때,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서로 몸이 달라도 반겨주자”라고 응답한 아이들의 감성에 탄복하는 이야기, 또 거기서 끌어내는 저자의 메시지는 퍽 유익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날 것 그대로의 속내를 드러낸 부분이었다. 특히, 직업윤리에 대한 그의 지론이 좋았다.

“내가 ‘사랑’을 동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 사랑은 마음이라는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자원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대체로 바닥이 난다. … 어린이 한 명 한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150-1)

  그뿐만이 아니다. “권위 없이 수업을 진행할 자신이 없었다”(189)는 솔직한 발언도 그렇고, 반말과 존댓말이 지닌 미묘함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존댓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분위기가 있었다”(190)고 하는 한편,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194)는 이율배반적인 말도 참 좋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도다. 어린이들과 어떤 자세로 마주할 것인가. 모 교수가 시상식에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하던데, 그런 사례들이 더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김민호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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