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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요한계시록 10장 7절~11절

기사승인 2022.11.03  16:18:30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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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요한계시록 10장 7절~11절

 

 

1. 갖다 먹어버리라!

 

① 자리정리 –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통과해야할 관문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대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천국은 하나님의 심판대를 전제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 세상에 대한 심판도 하나님의 통치를 완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내가 또 보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비전을 미리 보고 있다. 10장은 여섯 째 나팔 재앙이 끝나고 최종적인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 그 막간에 벌어지는 광경이다. ‘그 손에 펴 놓은 작은 책을 들고’ 이 작은 책은 삼대칠중재앙이 담긴 두루마리의 마지막 장이다. 일곱 째 나팔을 불 때 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되고 최후 심판과 하나님의 통치가 비로소 완성된다. ‘일곱 우레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10장의 핵심구절이다. ‘일곱 우레’는 마지막 최후 심판, 곧 일곱 대접 재앙의 시작되는 그 날이 언제인지를 알리는 소리다. 그러나 최후 심판(일곱째 나팔을 부는 날, 일곱 대접의 시작)의 날이 언제인지 인봉하고 기록하지 못하게 비밀로 감추어 두셨다.

 

② (7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은 앞서 살펴 본대로 삼대칠중재앙 가운데 마지막 일곱 대접이 시작되는 날,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벌어지는 그 날이다.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의해 점진적이고 점층적으로 재앙이 전개되는 까닭은 한 사람이라도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 나팔을 불게 될 때’ 일곱째 나팔을 부는 그 날이 언제 인지 봉인되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체치 아니하리라!’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하며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다.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그 날은 이미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경고하신 심판의 날이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과 그 예언의 성취되는 날에 벌어질 일들을 증언한다.

 

③ (8절)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되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선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은 주님의 음성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자 성령의 음성이다. ‘바다와 땅을 밝고 선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이 기록된 심판의 책이고 그 가운데 마지막 장인 일곱 나팔을 불 때 시작되는 일곱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하신 명령에 주목해야 한다.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되 네가 가서 책을 가지라’ 주님께서 최후 심판과 그 날이 언제인지 적힌 봉인된 말씀을 사도 요한에게 전달하셨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6~7)” 때와 기한은 기록하지 않고 봉인되어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확정하셨고 그 말씀을 사도 요한에게 전달하셨기에 최후 심판이 곧 시행될 것임을 나타내는 최후통첩이다. 천국 곧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코앞에 닥쳤다는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제스처(gesture)다.

 

2. 입에는 달지만 배에서 쓴 말씀

 

① (9절)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 ‘작은 책’은 심판을 기록한 책 중에서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와 그 날에 벌어질 최후의 심판, 곧 일곱 대접을 기록한 부분(章, part)이다. ‘갖다 먹어버리라’는 ‘갖다’와 ‘먹다’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문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땅에서 열매를 거두는 두 과정으로 구분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눅 8:11~15)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씨를 뿌린 후에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듣든 것을 넘어 지키어 인내하는 자리까지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말씀을 갖는 것을 넘어 말씀을 먹는 자리까지 나가야 할 것을 의미한다.

 

②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가 의인이다.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을 준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뜻이다. 이어지는 말씀에 그 뜻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 2:16)” 그 날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기준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라는 것이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혀도 무너지니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집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집을 지었는지에 대해서 판가름하신다.

 

③ (10절)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반복해서 강조하는 문장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들어도 달고 오묘한 생명과 진리임에 틀림없지만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고 준행하기 위해서는 쓰디 쓴 고난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는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3~57)”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차원을 넘어 내 삶에 적용하고 체화시키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과정까지 나가야한다. 곧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 고난의 잔에 동참하는 성만찬적인 삶이다. 말씀을 듣지도 않으니 어찌 준행을 논하랴!

 

 

3. 가시와 찔레 가운데 거할지라도

 

① (11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에스겔서에 그 뜻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8~10).” 사도 요한이 받은 책을 선지자 에스겔도 받았고, 사도 요한이 먹은 책을 선지자 에스겔도 먹었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1~3).”

 

② (겔 3:4~1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 에스겔의 시대나 지금이나, 택하신 이스라엘 족속이든 이방인이든 진리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언제나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진실을 전달하는 예언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앞서 6장에서 9장까지 일곱 인의 재앙과 여섯째 나팔 재앙을 친히 보여주셨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남은 일곱 째 나팔로부터 시작되는 일곱 대접의 재앙을 계속해서 증거 하는 사명을 당부하신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 하리라’ 선지자 에스겔이 택하신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달하는 데도 듣지 않았는데 하물며 사도 요한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달하는 것은 얼마나 힘겹고 어려울까!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일곱 인의 재앙과 여섯째 나팔 재앙을 받고도 회개치 않는 완고한 자들에게 다시 거듭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사명을 맡기신다. 사도 요한이 감당해야할 이 사명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이다.

 

③ (겔 2:6~7)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라 그들은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

▶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축복의 말씀만 하시지 않고 책망과 경고의 말씀도 하신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심’을 고백한다. 보호용 지팡이뿐만 아니라 징계용 막대기로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교만한 자가 패망하는 이유는 책망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망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겸손이 지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숭고한 빛과 고유의 맛을 잃고 쇠락하는 결정적인 사유 중에 하나는,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예언자적 설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예언자적 사명을 두려움 없이 감당하는 신실한 목회자들의 출현에 달려 있다. 예언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 지’ 다만 말씀대로 전할 뿐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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