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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시록 21장 1절~8절

기사승인 2023.05.16  12:33:50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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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시록 21장 1절~8절

 

 

1. 새 하늘과 새 땅

 

①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20장이 최종적인 심판의 비전이라면 21장은 최종적인 구원의 비전이다. 20장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의 결국이 ‘불 못’임을 전한다면 21장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의 결국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임을 증거하고 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삼대칠중재앙으로 소멸되었지만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을 선포한다. (메시지성경) ‘나는 새로 창조된 하늘과 땅을 보았습니다. 처음 하늘은 사라졌고, 처음 땅도 사라졌고, 바다도 사라졌습니다.’ 심판과 종말은 끝이 아니라 구원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노아의 홍수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심으로 끝나지 않고 말씀대로 준행한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새 창조를 펼치신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 날, 곧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생의 시작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 끝이 아니라 새 하늘이 열리는 소망의 시작이다. 인간적인 모든 노력이 끝장나는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진정한 종교가 시작되는 자리다. 그러니 종말(멸망,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정직한 절망이 진정한 희망의 시작이고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②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사도 요한이 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에스겔도 보았다. 에스겔은 솔로몬의 성전과 예루살렘성이 바벨론제국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 폐허 속에서 새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읍을 보았다.(겔 40장~48장)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당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 40:1~2)” 에스겔이 본 새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읍은 땅에 있는 눈에 보이는 성과 성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성전이며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성과 성전이다.

 

③ (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 (메시지성경) ‘보아라! 보아라!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오셔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신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보좌는 왕좌, 곧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도성(都城, capital city, castle town)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며 성전(聖所, Sanctuary)은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 출애굽기의 대망은 말씀대로 지은 하나님의 장막(성막, 회막)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출 40:34)” 에스겔의 최종 메시지도 동일하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5)”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이다. 이처럼 출애굽기와 에스겔의 대망이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이듯 계시록의 대망도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이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경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임마누엘(עִמָּנוּאֵל, Immanuel)’의 영광이다. 옛 성전과 옛 도성의 파괴와 멸망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심(겔 8:6)이라면, 이와 반대로 새 성전과 새 도성의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하심(겔 43:4)으로 대비된다.

 

 

2.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① (4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이다. 죽음은 영원히 사라졌다. 눈물도 사라지고, 통곡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졌다. 만물이 처음 질서는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세상의 자랑과 기쁨, 세상의 부귀와 영광도 지나가고, 이 세상에서 경험하던 고난과 슬픔도 지나간다. 그러니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고, 지금 어렵다고 낙심하지 마라! 본문은 불특정 다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박해와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가 더 분명하게 증언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2~14)”

 

② (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지금까지 살펴본 재앙과 심판은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정화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멸망에 이르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권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6절)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부터 끝까지 곧 심판에서 구원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이루었도다!’는 말씀은 지금까지 기록된 모든 심판이 구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나타낸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박해도 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 목적과 경륜) 가운데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다윗이 백성을 계수하듯 중간 결산하면 안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목자가 양 떼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는 까닭은, 마침내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요셉의 종살이와 옥살이는 총리대신이 되는 과정이다. 광야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다.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적인 판가름이 난다.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주시는 언약이다. 지금 의를 위해 받는 핍박과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축복에 비교할 수 없다. ‘값없이 주리니’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공덕으로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는 선물이다.

 

 

3. 이기는 자의 영광, 의의 최후승리

 

① (7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빛과 어둠의 싸움 곧 영적 전쟁이다. 이기는 자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을 가리킨다. 영적 전쟁의 과정은 내 몫에 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적 전쟁의 결과는 부활의 영광 곧 의의 최후승리다. 따라서 이기는 자는 이 믿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에 참예한 자들이고, 이기는 자의 유업은 믿음으로 의의 최후승리를 이룬 성도들에게 주시는 언약이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더 명료하게 증거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해 누리는 최고의 유업은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 John Wesley)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삶이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람이다. 경외하고 준행하면, 동행하시고 축복하신다.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메시지 성경) ‘이 모두를 받아 적어라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말씀이다’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이라는, 성경이 시종여일하게 전하는 이 언약을 마음 판에 새겨라!

 

②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겁쟁이나 불신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물질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죽기까지’ 순종하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면 ‘곧 죽어도’ 불순종한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은 세상 권세를 휘두르며 온갖 횡포를 일삼는 폭군을 넘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행하는 교만한 자들을 가리킨다.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창조주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소위 돌로 떡을 만드는 매직, 오늘날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의 대박을 좇는 비트코인이나 부동산 투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소위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오만한 요설로 거짓 신화를 설파하며 미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불과 백 년도 못 살면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미련한 인생들이다. 그들의 결국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마치는 그날에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진실을 끝끝내 멸시하고 외면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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