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드 시티 sex and city>에서 변호사 미란다는 그의 남자친구 스티브와 이야기를 나눈다. ‘병원에 가니 성병에 걸렸데. 누가 옮겼지?’ 그녀는 자신과 섹스했던 남자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는 물었다.’ 몇 명이야? ‘아홉명 정도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너는? ‘스티브는 대답했다. ‘난 바텐더잖아‘
20여 년 전에 방영되었던 미국 드라마다. 여자들의 섹스 경험은 징계의 대상이었다. 아니 이런 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섹스는 질문을 거부한 타부의 영역이다. 섹스는 오랫동안 지배자들의 통치 수단이었다. 법으로 정하고, 윤리와 도덕으로 만들어 무의식까지 검열해왔다.
조선시대에 열녀문이 가장 많이 세워졌던 시기는 임진왜란 때였다. 강간이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속에서 여자들은 자신을 지켜야 했다. 한 양반집 여성은 무사히 왜군을 피해 도망쳐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강 중간쯤 오자 스스로 강에 몸을 던졌다. 뱃사공이 그녀가 배를 탈 때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그녀에게 열녀문이 주어졌다. 왕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죽하면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었을까?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는 수없이 낭만을 이야기하는데, 현실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사람들은 섹스에 관심이 많은데 이상하게 섹스와 폭력은 혼돈되고 위험한 어떤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여전히 성교육은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모든 여자를 잠재적 피해자처럼 묘사되는 현실도 불편하다. 징계와 규범으로 가득찬 섹슈얼리티 문화는 즐거움이나 쾌락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력을 막고 수동적으로 만든다. 오죽하면 화장실에 카메라를 다는 범죄가 등장할까.
< 섹스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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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섹스의 진화' 라는 책을 썼다. 그러나 그 원제는 왜 섹스는 즐거운가(Why sex is fun?)가 주 제목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될 때 바뀐 것이다. 필자는 진화 생물학에 거부감이 있었다. 왠지 지금 현실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주범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섹슈얼리티 분야는 이중 성윤리,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성폭력, 남성 중심의 오르가즘 등 불평등한 영역인데 이것이 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정당화시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따라 읽어보다 보니 그의 의도는 섹스가 얼마나 다양하며,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사실상 언젠가 변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인권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소수자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산드라 하딩은 주변의 목소리가 강한 객관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인권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다이아몬드는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등등을 언급하면서 요즘 대세로 등장하는 인간만이 옳고 중심이라고 여기는 종차별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개들이나 다른 포유 동물들은 인간의 성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서문에 쓰고 있다.
” 저 구역질 나는 인간들은 한 달 중 아무 때고 섹스를 하더군. 바라라는 말이지 자기가 뻔히 임신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고도 그러니까 생리 직후 같은 때에도 남편을 슬그머니 꼬이더라고. 존은 어떻고 허구한 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요. 자기가 용을 쓰는 건 애를 만들려고 그러는 건지 헛짓거리를 하려는 건지 전혀 관심 밖이야…. 근데 진짜 황당한 예기는 저 부부는 심지어 마누라가 임신하고 있을 때도 줄곧 그 짓을 하더군. 더 끔찍한 일은 노인네들도 그 짓을 하지 뭔가?. 더 이상한 것은. 바바라도 부모도 모두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모르게 섹스를 하지 뭔가. 마치 무슨 죄라도 짓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같이 자존심을 가진 개라면 누구든 떳떳하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할 텐데 말이나.“
왜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섹스할까? 왜 인간은 남들의 눈을 피해서 섹스를 할까? 왜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 여자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배란 시기가 숨겨져 있을까? 왜 남자들은 수유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수유를 할 수 없을까? 다른 포유류와 달리 왜 인간 여자들은 50-60에 완전히 출산 능력을 상실할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것들을 동물들의 관점에서 다시 상상하고 생각해 본 것이다. 마치 과거 역사를 아는 것이 현재의 변화 동력이 되듯, 횡적으로 다른 동물들의 성생활을 관찰해서 인간의 성생활을 성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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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라드 다이아몬드 | ||
<쾌락, 인간의 섹스>
동물들, 아니 인간과 가까운 포유류들은 대부분 발정기에만 섹스한다. 포유류 대부분은 발정기가 되면 성기주변이 붉은색으로 변하거나, 특이한 냄새를 발산하거나 소리를 내가 혹은 수컷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내보인다. 오직 가임기에만 수컷을 유혹한다. 다이아몬드는 보노보 등 몇몇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포유류의 섹스는 쾌락이 아니고 생식에 머물러있다고 언급한다.
다이아몬드는 언어나 기술 발전을 가능케 한 직립보행이나 커다란 뇌처럼 즐거움의 원천으로서 섹스와 여성의 폐경은 문명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의 식민지 개척이 이국적 성적 판타지가 동력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는 여성들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성적 쾌락을 줌으로써 그들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장기간의 파트너십 즉 결혼이 성립되었다고 본다. 가부장제 문화는 인간 여성의 폐경을 일종의 능력 상실로 평가하지만 다이아몬드는 그것이 성장한 자녀를 돌보는 자연선택으로 보고 있다. 그는 나이들은 여성들의 지혜가 인류 문화에 끼친 영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 왜 남자들은 젖을 먹이지 않을까?>
쌍둥이 아빠인 다이아몬드는 기저귀를 갈고 토한 것을 치우며 육아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아내처럼 젖을 먹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묻는다. 이런 황당한 질문을 할 때 친구들은 호르몬 주사라도 맞고 젖을 주라고 농담을 건넸지만 그는 비둘기의 경우 암컷과 수컷 모두 새끼들이 먹을 젖을 분비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심지어 포유류 대부분은 임신하지 않고도 호르몬 주사를 맞고 젖을 생산하는데, 수컷의 경우 유선 조직을 수용할 젖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젖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호르몬 주사가 아니라 기계적 자극으로 신경반사와 중추 신경을 자극해 젖이 분비된 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호르몬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는 것을 환기하며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밝힌다. 섹스가 남녀가 아니라 스팩트럼의 영역임을 드러내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재생산 기술이 발전하여 섹스하지 않고 체외에서 수정하고 아이를 낳고 있으니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섹스,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
섹스는 오랫동안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영역이다. 규범을 받아들이라고만 한다. 질문없이는 배움도 없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질문을 만들려면 나와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거기서 상상력도 창의성도 가능하다. 다이아몬드는 다양한 차별에서뿐 아니라 종 차별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내가 되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와 다르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인정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글은 국가인권위 별별기자단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최형미 choihyungm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