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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산다.

기사승인 2018.01.15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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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기가 뜨거운 것에 접근하려 할 때 살짝 만지게 해서 뜨겁다는 것을 느끼게 해서 더 이상 스스로 만지지 않게 만든다. 감각이 이성화 되어 ‘뜨겁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현상학에서는 이것을 지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각을 통하여 세계를 알아나간다. 그리고 그 지각이란 감각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감각작용은 총체적으로 신체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몸을 벋어난 감각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생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몸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메를리 뽕티는 그것을 육화라고 말한다. 어쩌면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라는 몸을 가진 인간으로 오게 했다는 설명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실존, 그것의 최초의 형태는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몸뚱이라는 것이다. 즉 의식적인 세계가 아니라 감각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육체는 소중한 것이다. 인간이 죽을 때 사라지는 것은 육체이지 영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죽으면 영혼이 내세로 간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단순히 과학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이것을 따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데카르트로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신체를 나눌 때 데카르트가 마음에 손을 들어 준 것은 400년 전인 1600년 경이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 뇌가 컴퓨터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는 물질이다.

현대에서는 비물질적 존재로 인식되던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와 유사한 일종의 정보처리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인지과학 이론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데카르트 이후의 관념론은 마음이라는 것도 결국 몸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는 현상학에 밀리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사이버펑크에서는 다시 한번 역전극이 펼쳐질 조짐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1995년 제작된 만화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에 Ghost in the Shell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몸은 자유자재로 재생산, 변형이 가능하지만 기억을 저장한 뇌만은 인간이 생산할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즉 다시 주도권은 신체가 아닌 마음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캔, 헤킹을 통하여 뇌를 마음대로 조종을 할 수는 있으나 창조는 할 수 없다.

그 때까지 살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으나 영화에서는 2,500년경 즉 나의 15대 후손(현재로는 없으나)때쯤 가서는 이런 현상이 가능하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디까지나 만화나 영화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일일 뿐이다.

현재까지는 몸이 대세이다. 인간의 몸은 환경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움직인다. 갑자기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듯이 어떤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행동 한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라는 말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몸이 생각 한다.’는 것이다.

메를리 퐁티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로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육체가 모든 환경에서 지각하는 주체로서 살로서 느끼듯이 우리는 세계를 살로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세계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고 세계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가 보여주었던 길이다. 우리들 평범한 인간들이 자기 몸으로 느끼는 것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예수나 부처는 자기의 살에서 세계의 살을 느낀 분들이다. 부처가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한 까닭이다. 카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지구인들이 왜 현재 교황에 대하여 존경을 표할까? 그가 세계에 대하여 느끼는 감각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수를 하면서 타인을 느끼듯이 인간은 살로서 타인을 느끼는 것이다. 몸을 지닌 인간이 서로 간에 살로서 지각하는 것에서 세계와의 관계는 맺어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몸으로 세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실존, 그것의 최초의 형태는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몸뚱이라는 것이다. 즉 의식적인 세계가 아니라 감각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환경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움직인다. 갑자기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듯이 어떤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행동 한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라는 말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몸이 생각 한다.’는 것이다.

유능한 테니스 선수가 경기를 할 때 ‘지금 공이 저렇게 오고 있으니까 나는 저쪽으로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려가서 어떤 자세로 공을 쳐야지’하고 생각하면서 공을 치지 않는다. 순간순간 몸 자체가 전체 상황에 맞추어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기가 막히게 공을 쳐낸다. 이미 그렇게 주어진 환경 세계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우리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몸이 환경 세계를 상대해서 발휘하는 원초적인 기능은 바로 지각이다. 지각 중에 환경, 세계, 관계에 대하여 하여 가장 예민하게 반응 하는 것이 성욕인 것이고 그러므로 미셀 앙리는 에로티시즘을 통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이 왜 섹스에 집착하는가? 왜 사랑을 섹스로 완성하고 싶어 하는가? 상대방을 살로서 느끼고 싶어 하는 원초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로서 밖의 세계와 접촉한다. 살은 밖의 대상이 그대로 전달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를 살로서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산다. 인도에서는 온도가 영상 10도로만 내려가도 수천 명이 얼어 죽는다고 한다. 인도인의 몸은 알라스카 에스키모의 몸과 전혀 다른 것이다. 아내는 소리, 냄새에 대하여 민감하고 나는 빛과 온도에 민감하다. 느낌의 차이가 많다. 인간은 오감의 상태에 따라 주변을 다르게 느낀다.

인간은 몸으로 세상을 살면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몸, 즉 감각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폭은 동물적인 수준에서 도인의 수준까지 넓다.

 

   
 

 

 

지성수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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