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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라

기사승인 2018.10.14  00: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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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날아온 남과 북 사이 화해의 소식은 꿈만 같다. 벌써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북미 간 두 번째 정상회담도 약속대로 날만 받으면 될 것이다. 반복적으로 미사일을 쏘고 지하 핵실험을 도발하던 과거의 김정은이 아니고, ‘화염과 분노’로 응징을 호언장담하던 미국의 트럼프가 아니다. 이 땅에서 한반도 전면전을 가정한 3대 한미연합훈련인 UFG 연습, 키리졸브(KR) 연습, 독수리(FE) 훈련이 중단 된 것은 놀라운 변화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화해와 협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선구적인 문서로 평가받는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는 남과 북의 ‘화해, 불가침, 교류와 협력’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 이듬해에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도 발표하였다. 놀랍게도 노태우 정부시절 이루어진 일이다. 당시 구 쏘련의 몰락과 동구권의 붕괴는 북과 남 모두에게 전환과 변화의 긴급성을 모색하게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남북은 ‘기본’을 합의하고도 그 ‘기본’을 오래 지키지 못하였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도 원점으로 되돌아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2018년에 이루어진 남과 북 사이의 해빙 무드는 예상 밖의 속도감과 국내외의 기대감을 부풀려 순풍을 단 듯하다. 다만 연일 발목을 걸고, 멱살을 잡는 냉전세력의 몸부림은 막 뗀 평화의 걸음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보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1990년대 초 비슷한 시기에 변화를 모색하던 독일의 동서와 한반도의 남북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너무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 원인은 서독이 동구권 붕괴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당사자란 배경도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꿰찬 독일의 정치인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진보 대 보수의 진영을 초월하여 일관되게 추진해온 그들의 ‘기본’ 덕분이다. 애초에 서독은 완전한 헌법이 아닌 미완의 기본법으로 미래의 통일을 준비하였다. 말로 통일을 외치지 않았고, 같은 민족을 주장한 적이 없으나 결론은 하나가 되었다.

1990년 독일통일을 전후해 시대의 징조를 바로 보고, 판단과 결정을 한 정치인 중 헬무트 콜 전 총리(1930-2017년)가 있다. 콜은 무려 16년 동안 절반은 반쪽서독에서, 절반은 통일독일에서 각각 8년씩 독일 총리로서 일하였다. 그 임기의 한 복판쯤 동구권은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서독은 통일과 함께 유럽연합의 선구자로 부상하였다. 이후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적 중심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독민주당(CDU) 소속 콜 총리의 가장 큰 업적은 동독과 서독을 병합하여 통일독일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당을 달리했지만 전임자들인 사회민주당(SPD) 출신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신실하게 계승하였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여와 야처럼 두 정당은 대 공산권 정책인 할슈타인 독트린과 동방정책 사이에서 늑대처럼 으르렁 거린 시절도 있었다.

콜 총리의 경우 정책은 유연하게 그러나 실행은 단호하게 하였다. 1989년 10월, 하루에도 수천 명씩 동독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독일이 큰 혼란에 빠지면서 너무 성급히 통일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여론도 있었다, 그럼에도 콜 총리는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대담하게 응수하였다. 독일의 운명을 ‘통일이라는 열차’ 위에 태운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역사의 현재로 만든 장본인이다.

게다가 그는 독일통일을 경계하는 유럽의 이웃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럽통합에도 앞장섰다. “전쟁이 다시 유럽을 휩쓰는 것을 막기 위해선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유로화 도입 등 유럽의 일치를 적극 추진했다. 최근 몇 년 새 유럽통합의 든든한 토대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자 은퇴 후 오래도록 잊혀진 인물이었던 콜은 ‘독일이 현금을 쌓아두고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였다.

2017년 6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소천했을 때 갓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콜 전 총리의 위업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을 대표해 대통령의 페이스 북에 올린 조문에서 역시 독일통일의 공을 앞세웠다. ‘사회민주당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기독민주당 헬무트 콜이 잘 이어 받아 결국 통일로 이끌었다’고 높이 치하하면서 “참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그가 직면한 한국 정치현실의 험로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민족적 이슈에서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지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괜찮은 지도자라면 국가적 과제 앞에서 출신, 이념, 정치지형의 편가름을 우선 계산할 리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란 엄중한 염원 앞에서 겨우 몇 년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같은 입으로 정반대의 말을 하는 그런 위선적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한국 정치인들은 헬무트 콜, 그 위대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한반도의 현실을 정직하게 내려다 볼 이유가 있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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