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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공동체)운동

기사승인 2018.10.16  03: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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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공동체)운동

- 밝은누리를 일구며... -

 

최철호 목사 (밝은누리교회)

 

   
 

1. 고백과 첫 부르심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성령사건을 통해 새로운 삶과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죄와 사망 권세가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나,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삽니다. 총체적 해방과 구원사건입니다. 이는 성령사건으로 거듭난 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지체로 사는 삶(한몸살이=교회공동체)을 통해 구현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에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통해 하나님나라는 증언됩니다. 성령은 더불어 사는 지체들, 돕는 배필을 통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능력이며 은총입니다.

성서는 결코 세상 정사와 권세, 시대우상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과 내면은 시대우상에 익숙하게 길들여졌습니다. 시대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오히려 지혜고 능력이라 유혹합니다. 겸하여 섬기려는 욕망을 서로 추동하고 합리화 하지 않게 늘 깨어 성찰하고, 서로 비추고 도우며 하나님 형상을 닮아 갈 것입니다.

80년대 후반, 한국교회와 겨레역사가 처한 아픔으로 고뇌하고 애통하던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과 현실 교회의 큰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현실을 지배하는 권세를 거부하고, 하나님 주권을 믿고 삶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것인가? 돈, 소비, 권력, 제국, 학벌, 부동산, 분단이데올로기 등 우리시대 우상들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인가! 종교적으로는 하나님께 제사하지만, 실제 일상 삶에서는 바알을 섬겼던 이스라엘의 삶이 곧 우리 삶이 아닌가!  ‘일상 삶에서는 세상을 섬기는 기독교 종교인! 집단 최면적 우상숭배..!’

성서를 ‘실패자들의 이상’을 기록한 것이라 치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잘 하고 있나 하는 행위의 수준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는가 하는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입니다.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는 왜곡된 세상에 충격을 일으키며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합니다. “내가 너로 파괴하고 무너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리라”(렘1:10)

 

2.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

현재 한국사회는 지난 100여 년간 중첩된 역사와 문명 모순이 집약적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감격스러운 역사 이면에 은폐되었던 가슴 아픈 역사와 문명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드러납니다. 일제와 분단, 전쟁, 냉전을 거치며 주체적으로 성찰할 겨를 없이 달려 온 역사였기에 서구화, 기독교화, 산업화, 도시화로 대변되는 근현대사 모순이 중층적으로 드러나는 위기입니다.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역사에 담긴 상처는 기만을 일상화하고 기회주의 처신을 주요한 사회생활 지혜로 둔갑시켰습니다. 뿌리 깊은 사대주의 문화와 분단의식은 정상적인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주체성과 창조성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생명 원천인 하늘땅살이(농사)와 살림을 업신여기고, 생명을 기르는 땅을 온통 개발과 부동산 투기로 훼손했습니다. 후손 대대로 더불어 누려야 할 생태계를 특정 이해집단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너무도 조급하게 파괴해 버리는 현실입니다. 교육과 직장 현장 등 사회 곳곳에서 정당하지 못한 경쟁이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후 한 명까지도 이겨야 할 경쟁자로 대상화 해 소외시킵니다. 과도한 무한경쟁에서의 성패가 진정한 자기실현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더 깊은 고독과 소외에 빠져들게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삽니다. 깨닫게 되어도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내몰리는 지경입니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역사와 문명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음시대 생존을 심각히 생각해야할 정도로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근대화 자체가 기독교화와 맞물린 채 전개된 것이기에, 한국교회는 근대화 총체적 모순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세계 교회사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지만, 은혜를 겸손하게 받지 못했습니다. 온갖 시대우상들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뿐 아니라 교회와 종교지도자들이 스스로 우상이 되었습니다. 애통하고 가난한 생명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권력과 부, 기만의 대명사가 되어 비난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깊은 회개와 참된 성찰이 필요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용서와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이미 용서하고 새로운 소명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사회 개혁과 교회 갱신을 위해 무수한 말, 이론이 제안되고 있으나 공허한 울림입니다. 실효가 없습니다. 지금은 멋스럽고 세련된 말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삶과 괴리된 상품화 된 신학,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삶과 사건을 해석하고 증언하지 못하는 관념적인 수입 학문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믿고 배우고 고백한 바대로 정직하고 우직하게 더불어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성령 도우심을 구하며 복음 능력으로 우리시대 위기에 대한 대안을 작지만 정직하게 구현해 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성서는 세상 정사와 권세가 조장하고 지배하는 삶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라고 권면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사는 은혜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이는 ‘회심한 하나님 백성(교회)’의 구별된 삶을 통해 수행된다고 가르칩니다.

시대우상은 우리 욕망을 조작하며 지배합니다. 이러한 우상 작동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새로운 욕망을 생성해 내는 관계(한몸살이)’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젊을 때 잠시 하고 곧 체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일관되게 수행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한몸살이입니다. 성령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함께 체험하는 ‘은총을 구현하는 관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강제하는 삶을 거스르고,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공동체) 운동은 한 시대와 문명이 생명력을 다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생명력과 희망을 주는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거대한 교권체계가 지닌 위기를 깨우치고 대안을 모색하는 영감을 담고 나타납니다. 동일한 패러다임 내에서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과제지만, 전환시대 과제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즉 ‘현실을 변혁’하는 것입니다. 전환시대는 ‘학습과잉, 사유빈곤, 생명핍절’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이 중요합니다. 기존 개념과 사고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사건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기존 패러다임에서는 미약한 듯이 보이는 새로운 주체,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며 새 시대를 엽니다.

하나님나라는 기존 사고 틀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것이 강제하는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나라는 관습적 사고와 정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가능성과 능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거대 조직화되고 세속화된 틀로는 실천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 제자도’, 세속적 가치질서를 거스르는 새로운 생활양식 등이 보다 철저하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는 말씀과 성령사건에 보다 민감해지는 은총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이나 역량(규모/자본력/권력 등)에 상관없이 기존 가치질서에 강력한 위협이 되는 힘이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문명을 잉태해 내는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수도자가 지닌 영성과 혁명가가 지닌 역사의식을 동시에 품고 생활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성서가 증언하는 가르침 앞에 우리는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온갖 타협과 자기 합리화 욕망을 내려놓고.

초대교회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사건을 통해 생성된 한몸살이(공동체)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교회의 원형입니다. 은사와 물질을 함께 나누고 공유했습니다. 나눔을 통해 모두 핍절함이 없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새로운 삶의 양식, 관계를 창출하며 하나님나라를 증언했습니다. 때에 맞게 다양한 시대 교회개혁 운동에 중요한 영감을 일으키며 계승되었습니다. 세속화되고 국가 종교화된 교회를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교회로 개혁하는 운동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많은 핍박과 세속화 유혹을 뚫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지금도 말씀과 성령을 따라 철저한 제자도를 구현하는 하나님 백성은 세상 곳곳에서 세상 정사와 권세가 강제하는 삶을 거부하고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 최철호 목사 (밝은누리교회)

3. 하나님나라, 살아있는 현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 은총을 구하는 연약한 자들의 우직한 삶과 사랑을 통해 세상 한 가운데서 증언되고 전진합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교회/공동체)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연약하고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이상으로 규정하고 자기 삶에서 항상 유보합니다. 성서는 실패한 자들의 이상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성서는 세상 한 가운데서 구현된 하나님나라 사건을 증언한 책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성서 증언을 믿고 따라 사는 사람들을 통해 언제나 살아있는 현실이며 약속입니다. 말씀을 믿고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증언합니다. 정직하게 약속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성령 은총을 구하며...

 

4. 생명 = 더불어 사는 삶 = 생명평화

생명生命은 명命 받아 사는生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흙과 생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생명 원천인 하나님을 떠나면 죽은 몸이고, 흙을 떠나서는 건강하게 살 수 없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생명 근원에 가까울수록 건강합니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을 따릅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하나님은 스스로 그러한 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온생명 속에서 하늘땅과 어울려 사는 생명입니다. 더불어 사는 온생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새 생명을 잉태합니다. 다른 생명들과 관계를 넉넉하게 누리는 만큼 생명력이 고양됩니다. 그 속에 한 몸 되어 사는 신비가 있습니다. 폐쇄와 경직, 획일성은 살아있는 관계성과 생명력을 잃어가는 모습입니다. 생명은 다른 생명과 더불어 있을 때 생명입니다. 또한 몸담고 있는 사회역사, 고난 현실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창조된 생명이 온전한 생명으로 회복되고, 생명이 서로 평화를 누리는 사건을 통해 세상 한 가운데서 증언됩니다.

 

5. 성령은사로 한 몸 된 삶

성서는 한 사람이 지닌 지고한 도덕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사람이 지닌 능력에 의존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우상화시키는 과오를 반복하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간구하는 연약한 자들이 서로 삶을 나누고, 은사와 소명을 공유하는 한몸살이를 통해 하나님나라는 전진합니다.

한몸살이에서 하나님 주권은 서로 주체가 되고 서로 세워주는 것을 통해 구현됩니다. 특정한 은사를 중심으로 위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한 몸 된 지체들이 은사와 소명에 따라 서로 책임 있는 영적 지도력을 갖추고 존중합니다. 성령을 통한 주체적 상호목회입니다. 지체들이 성령 은사와 소명에 따라 함께 주체가 될 때, 그 속에서 성령의 주권적 다스림이 구현됩니다. 은사는 성령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한 몸 된 지체들 상호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만인 제사장’이라는 종교개혁 운동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비록 교회개혁 후손들조차도 그 실제에 있어서는 이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한 게 현실이지만, 한 몸 된 관계 속에서 주관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참되게 믿는다면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될 가치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교회는 성령은사를 공유하며 한 몸 된 관계입니다. 은사는 부르심(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주시는 능력입니다. 공동체 관계, 삶에서 구현되고 검증됩니다. 은사 주체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은사로 인해 교만해지거나 다른 은사와 비교하여 부러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신앙입니다. 공동체가 생존해 가는 과정에는 특정한 은사가 주요하게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때와 정황에 따라 유력하게 드러나는 은사가 다양하게 변합니다. 인정욕망에 강하게 사로잡혀 마음이 조급해지면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특정한 시기에 유력하게 드러나는 은사를 시기하고 질투에 빠집니다. 거룩한 외형으로 은폐된 채 표현되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한몸살이 전체가 함께 속기 쉽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적 정황과 때에 따라 가장 유익한 은사를 드러내십니다. 우리 생각보다 늘 넘치게 주시는 분입니다. 지체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은사를 공유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사는 삶입니다.

 

6. 한몸살이 지도력, 은사와 상호목회

은사에 대한 이해는 곧 한몸살이 지도력 문제와 관련됩니다. 한몸살이에 주시는 다양한 은사에 따라 역할이 분담되고 다양한 사역이 생성됩니다. 각 은사는 한몸살이 내에서 가치 우열 없이 동일한 가치와 위상을 갖습니다. 때와 정황에 따른 역할 구분만 있습니다. 서로가 지닌 은사를 존중하며 한 몸으로 세워져 갑니다. 의사결정 과정도 은사를 공유하며 한 몸 되는 원리에 따릅니다. 제도와 형식을 최소화 하고 방편적으로 설정합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자유로운 역사에 민감히 순종하며 자율과 역동이 넘치는 한몸살이입니다.

한몸살이 초기 생성과정을 이끌고, 소명을 향해 전환을 추동하는 역할을 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주로 초기 생성과정에서 확인되고 강력한 영향력을 얻습니다. 한몸살이가 안정적인 살림과정에 있을 때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가 전환기에 그 때를 분별하고 전환을 추동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동체 존재이유와 가치를 담지한 채, 미래전망을 수립할 때 주요하게 드러납니다.

의미 있는 역사 사건으로 생성되는 모든 조직이나 집단은 이런 지도력과 함께 생성됩니다. 신앙공동체 뿐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 변혁운동 조직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에 무지하거나 경직된 관념에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민주성이라는 가치를 경직된 관념으로 다루면 이런 현상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논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근대 실체적 개인주의에 토대한 민주성이라는 관념에 종속된 자세입니다. 성령 역동성을 통해 생성되는 관계 특성을 포착하기 어려운 세계관입니다. 중요한 것은 때에 맞게 다양한 은사에 따라 지도력이 분화 발전하여 상호지도력을 체현해 가는 것입니다.

한몸살이가 살림과 성숙 과정을 안정되게 수행할 때 다양한 은사가 집중적으로 드러납니다.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하고 성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지도력이 다양하게 생성되고 검증됩니다. 은사가 풍성하게 드러나고 은사에 따른 역할 분담을 통해 한몸살이에 주신 부르심을 구현하는 사역이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이 시기에 다양하고 적절한 지도력이 생성되지 못하면 한몸살이는 위기를 맞습니다. 생성 초기 역동성과 창발성이 상실되어 생존 자체만을 위한 집단으로 전락합니다. 사역도 은사와 소명을 구현하는 은총사건이 되지 못하고 일에 치여 생명이 고갈됩니다. 세속적인 권력 놀음, 인정 투쟁에 빠져 시기와 질투, 갈등이 얽히고 한몸살이 생명력을 소진시킵니다. 대외적으로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우상이 지배하는 집단으로 전락됩니다. 한몸살이 건강한 성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어떻게 잘 공유하고 서로 존중하며 섬기는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7. 육화된 하나님나라, 은사와 물질 나눔으로 생성되는 선교하는 공동체

하나님나라 백성은 희년과 하나님나라를 현재화 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세속 가치질서를 거스르는 구별된 한몸살이를 창출하는 운동으로 구체화 됩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지속할 자생력이 한몸살이에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충만케 하는 하나님 선교에 참여합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우상에 지배된 삶을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사는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며, 전인 치유와 회복을 일으킵니다. 또한 불의와 불평등, 분단과 억압, 전쟁과 기만에 저항하는 섬김과 사랑, 생명평화로 구체화 됩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는 성령의 교제케 하시는 은총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한 인격으로 성육신 하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이는 성령사건을 통해 생성되는 한몸살이를 통해 역사 속에 끊이지 않고 계승됩니다. 성서는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은사와 물질을 함께 나누는 성령사건을 통해 생성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공동체 건강은 얼마나 크고 많고 화려한 외형을 지니고 사역을 수행하느냐에 의해 증언되지 않습니다. 성령 은사와 물질 나눔을 통해 서로 핍절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온전한 사귐과 나눔을 토대로 감사와 찬양, 새로운 생명 사건을 일으키는 헌신(선교)이 이뤄집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구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된 백성을 세상에 보내 하게 하시는 모든 일이 선교입니다. 따라서 참된 회개와 선교는 한 맥락에서 구현되는 사건입니다. 전도와 사회책임도 같은 맥락 속에 있습니다. 선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사건화 됩니다. ‘가서’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는 사건과 ‘와보라’하여 하나님나라를 지금 여기, 일상생활 한 가운데서 증언하는 사건으로 구체화 됩니다.

 

   
 

8. 한몸살이를 살리는 것, 위협하는 것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 몸 된 지체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입니다. 한 몸 된 지체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염치를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삶입니다. 관계를 생기 있게 하는 힘은 사랑과 공평과 긍휼입니다. 한몸살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교만입니다. 교만은 기준이 자기에게 고정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대상화 시킵니다. 교만은 단순한 심리적 상태가 아닙니다. 교만이 작동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세속 가치질서에 대한 욕망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적 상태로만 은폐되어 있지 않고 결국 한몸살이를 위협하며 폭로됩니다. 한몸살이가 땀 흘려 일구는 새로운 삶과 가치들, 정성껏 살아가는 지체들을 우습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키며 드러납니다. 교만은 결국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교만한 자가 신앙하는 삶에서 떠날 때 선명하게 폭로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며, 교만한 자는 하나님나라를 살 수 없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9. 새 삶을 가로막는 것들... : 되돌아가려는 욕망, 겸하여 섬기려는 욕망!

하나님나라를 맞이하는 회개는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구체화 됩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삶, 그 권세를 거부하는 ‘믿음의 탈주’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며,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와 함께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탈주와 도약을 가로막는 것이 삶 전체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존 익숙한 삶, 습관에서 벗어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은 낯설고 불편하기 마련이며, 심지어 모호함에서 오는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삶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믿음은 모호함에서 오는 불안을 통과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엄습하는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걸림돌은 ‘애굽의식’, ‘되돌아가려는 욕망’입니다. 차라리 애굽, 세상이 편한 것이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차라리 좋은 겁니다. 이는 ‘겸하여 섬기려는 욕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제사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바알문화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실제 삶에서는 자본, 권력, 제국, 학벌, 부동산, 분단이데올로기 등 시대우상을 섬기는 기독교 종교인이 양산됩니다. ‘집단 최면적 우상숭배’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외면하고 죽입니다.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경배하는 문화를 열심히 반복하지만,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 사건이 벌어지면 외면하고 거부해 버립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우상이 강요하는 삶을 거부하는 믿음의 탈주는 위험이자 기회입니다. 새 생명이 잉태되는 모든 생명사건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품습니다. 문명 전환, 새로운 문명 탄생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삶은 애통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입니다.

 

10. 더불어 영성과 홀로 영성, 공부=기도=노동

홀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더불어 사는 삶을 잘 살 수 없습니다. 지체들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홀로 영성은 한 몸 된 더불어 영성에 토대합니다. 더불어 영성을 깊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홀로 영성입니다.

영성은 생명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 맺는 힘이며, 이를 토대로 모든 생명은 서로 관계 맺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신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하나님 말씀과 성령을 철저하게 따르는 삶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맺는 사귐과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고 듣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간구하는 것이고, 듣는 것은 침묵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은 애통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 능력을 덧입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관계가 깊어 질 수 록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인성이나 영성은 프로그램으로 훈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근본에 있어 그렇습니다. 인성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삶, 사랑과 책임이 담긴 잔소리들을 통해 훈련됩니다. 인성보다 복잡한 영성은 더욱 그렇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영성을 수련하는 것은 방편적으로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자아, 죄 된 본성은 프로그램 뒤에 얼마든지 숨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영성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과 함께 말씀을 따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서로를 비추어 주는 관계, 그 관계를 통한 일상의 삶,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영성수련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은 자기를 속일 수 있습니다. 자기 욕망과 성령 음성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사실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체 안에 있는 성령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에다 자기를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자기를 비추라고 합니다.(無鑑於水 鑑於人) 지체들에게 비친 자기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 음성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생기는 신뢰 없이는 경험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한몸살이를 통해 주시는 신비로운 은총입니다.

또한 영성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공부입니다. 몸과 마음을 닦고 노동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책으로만 하려는 지식인의 오래된 정신 질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공부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닦는 수련입니다. 노동은 하나님 창조사건에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창조사건입니다. 부름 받은 몫을 따라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더불어 사는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은 생명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노동과 공부, ‘항상 배우는 삶의 자세’를 통해 한 생명은 창조세계 전체를 향해 새롭게 열립니다. 자본과 시장에 종속된 노동과 학습, 생명을 상품으로 소외시키는 노동, 삶으로 순환하지 못하는 관념은 인간을 온전하게 성숙시킬 수 없습니다. ‘학습과잉, 사유빈곤, 영적피폐’라는 병적 현상이 고착됩니다. 관계 맺는 모든 생명을 도구와 상품으로 대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힘씁니다. 열심히 외워서 시대우상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는 한 시대를 주도했던 문명 창발성이 소진될 때 나타나는 뚜렷한 현상입니다.

항상 배우고 깨달은 바대로 살려는 삶, 그것이 영성 깊은 삶입니다. 하나님,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갈망, 창조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정과 노동,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깊은 성찰과 진중한 실천, 이런 공부와 노동을 통해 영성은 하나님나라를 일구는 능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갑니다.

 

   
 

11. 생활영성수련 : 생활양식과 문명 전환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일상 생활양식에 한 시대 문명과 영성의 뿌리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힘은 매우 추상인 듯하지만, 지극히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통해 정체를 드러냅니다. 시대우상은 먹고 자고 입고 즐기는 생활양식을 통해 일상적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일상생활에 바탕 하지 않은 영성은 공허합니다. 영성수련은 일상생활 관계에 기초할 때 비로소 정직하게 삶을 변화시킵니다.

시대우상이 강제하는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한몸살이는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 특히 먹는 것에 있어 구별된 힘과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생명밥상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한몸살이가 안정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토대입니다. 시대우상이 강요하는 생활양식은 병을 양산하는 체제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그 약이 또 다른 병을 주는 죽임순환입니다. 이 순환에 의료자본, 생체권력이 작동합니다.

먹는 것은 문명 전체에 대한 성찰과 전환을 일으키는 기점입니다. 자연과 문화, 생산과 소비에 대한 세계관을 바꾸고, 건강과 질병, 치유에 임하는 자세를 근원에서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에 부여하신 힘, 생태적 삶의 가치를 깨닫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창조세계에 부여하신 자연 치유력, 생명상호간 치유력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수련하는 생활영성수련은 몸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근원에서 새롭게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밥상, 몸에 나타나는 낯선 현상들과 더불어 중용을 유지하는 삶을 일상에서 꾸준히 만들어가는 생활영성수련을 통해 생명평화가 구현됩니다. 생명 근원이신 하나님 숨결, 창조 영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하나 되게 하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나님 생명 속에서 사는 삶입니다.

 

12. 배우고 가르치는 삶(교육) : 새로운 주체 양성을 통한 생명력 고양

시대우상이 강제하는 삶을 거부하고 새 삶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또한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있어 자생력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시장을 지배하는 자본에 장악되지 않는 새로운 배움의 내용과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마을을 토대로 공교육과 대안교육, 자녀교육과 부모교육,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생활영성수련이 하나로 어우러진 교육입니다. 한몸살이가 깨닫고 고백한 신앙고백, 철학과 역사, 가치와 생활양식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 공유합니다.

교육은 가르치고 키우는 모든 생명살림입니다. 삶의 모든 관계와 터전에서 이뤄지는 생명사건, 생명살림입니다. 산 들 물 바람 온생명 속에서.., 태중에서.., 밥상에서.., 마당에서..., 책상에서... 이 모든 곳에서 배우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지닌 생명 기운이 더욱 힘차게 약동하도록 돕고 가르칩니다. 삶을 해석하고, 생명력을 고양하는 관념을 만들고, 관념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키웁니다. 생명을 억압, 소외, 상품화시키는 세상 권세를 폭로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훈련합니다. 온생명  신비, 진리에 담긴 경이로움을 갈망하고 깨닫고 나누는 삶을 살도록 돕습니다. 생명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를 위해 함께 실천하며, 다양한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웁니다. 삶을 스스로 다스리는 능력을 키우고, 일상을 주체로서 살아가는 지혜와 역량을 연마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생명 약동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 생명평화가 더욱 풍성하게 구현되는 세상을 향해 함께 꿈꾸고 실천하는 동지가 됩니다.

이는 크게 청년지도력 양성과 자녀 교육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됩니다. 청년지도력을 양성하는 것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잇고, 한몸살이를 활력 있게 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역사 참여와 연대, 다양한 안팎의 사역을 활성화 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녀세대에 한몸살이 가치와 소명을 구현하는 교육내용과 배움의 틀을 만드는 것은 한몸살이 생명력을 이어가도록 하는 맥락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공교육 개혁운동이 지닌 현실 가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한몸살이 대안교육을 구현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청년지도력 양성 없이 자녀 교육에만 집중되면 한몸살이는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관습화 되어 역동성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청년지도력 양성과 한몸살이 자녀 교육이 균형 있게 이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몸살이 안에서 생성되는 안정적인 샘물과 뭇 생명 기운을 머금은 채 굽이쳐 들어온 새물이 합류하며 한몸살이를 더욱 건강하고 활기 있게 만듭니다.

 

13.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더불어 사는 삶과 마을’

시대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구별된 삶을 생성하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현장에서 이뤄집니다.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 결혼임신출산육아, 공부(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욕망을 조작하며 지배합니다.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불안을 조장합니다.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서로 맞물린 채 생명을 고갈시킵니다. 시대우상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것과 다른 욕망이 생성되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것이 성령과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지체로 사는 거듭난 생명(한몸살이)입니다. 세상 가치질서, 우상이 강제하는 삶을 거부하는 것은 혹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삶이라는 현실 자체가 이미 관계 사건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관되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근본 토대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구별된 교회(한몸살이)를 통해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나라는 증언됩니다.

일상을 서로 투명하게 비추는 삶이 없으면, 고백과 신념은 기만으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생각은 혁명적인데 삶은 시대우상을 좇아 사는 삶이 참 많습니다. 무책임하고 기만하는 삶이 됩니다. 반면 자기 몸, 가정, 지역에만 국한되어 실천하는 것은 동시대 생명 질곡을 외면하는 이기적 삶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온 생명 맥락에서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몸이 처한 구체적 맥락에서 지역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관계를 상품관계, 경쟁관계로 만드는 사회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첫 걸음은 한 몸 된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상품이나 경쟁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서로 돌보는 관계망, 생활양식이 필요합니다. 개인이나 가정 단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마을’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마을은 하늘 땅, 바람과 물이 어우러져 사람이 살기 좋은 기운을 형성하는 곳에 생성되는 생명살림터입니다. 자연 속 한 생명인 사람이 사회문화 주체로 전환되는 기본 토대입니다.  생명을 키우고(육아) 돌보고(복지) 가르치는(교육) 기본 관계망입니다. 두레, 울력, 품앗이 등 서로 돕고 나누는 생활양식을 통해 제도적 획일성이 최소화 된 자치 자족(자립)하는 생활단위입니다. 결혼임신출산육아, 하늘땅살이(농사) 등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일들은 마을공동체에 대한 필요와 중요성을 더욱 잘 깨닫게 합니다. 자본과 생체권력에 가장 효과적으로 길들여지는 일이면서 동시에 생명사건을 가장 민감하게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는 결국 생명 존속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 문제에 직면하게 합니다.

마음은 몸을 통해 드러납니다. 공동의 고백이나 철학이 집단 인격의 마음이고, 마을은 집단 인격의 몸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신념과 가치는 마을이라는 공동의 몸을 통해 드러납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지점에서 자기 이념이나 신념을 구체화하고 검증할 수 있는 관계망이 필요합니다. 일상생활과 사역 현장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새 힘을 추동하는 관계망입니다. 결혼임신출산육아와 교육, 식의주락 생활양식 전환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하는 마을입니다.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마을공동체 회복과 생성은 도시소비문명이 만들어 내는 온갖 생명 질곡을 풀어가는 매우 중요한 토대입니다.

   
 

14. 밝은누리 마을생활

서울 강북 북한산 아랫마을과 강원도 홍천 아미산 아랫마을, 경기도 군포 수리산 아랫마을에서 마을을 회복하며 더불어 삽니다.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일상생활과 놀이, 예배와 영성수련, 선교를 함께 합니다. 생명평화가 사라진 생활문화 한계를 극복하고, 마을공동체 회복을 통해 하나님나라 가치질서를 구현합니다.

마을밥상에서 점심과 저녁 밥상을 함께 합니다. 마을나눔터를 통해 자동차와 생활용품을 공유합니다. 다양한 울력과 품앗이, 두레로 마을을 일굽니다. 마을잔치(결혼/돐/동지잔치...)를 함께 만들어 즐깁니다. 공동육아, 마을초등학교, 생동중학교, 삼일학림(고등대학통합과정)을 통해 함께 배우고 가르칩니다. 마을찻집, 마을신문, 마을서원과 도서관, 마을공방과 창작실 등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해결하며 속 깊은 사귐 속에서 은총을 누립니다.

비혼 청년들은 <형제/자매방>에서 함께 삽니다. 물론 의무적이지 않고 서로 자율적 필요와 상호판단을 통해 참여합니다. 청년시절에 ‘함께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결혼 후 가정생활에도 큰 유익과 지혜를 줍니다. 또한 결혼,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통해 공고해지기 쉬운 ‘세속 생활양식’, ‘가족 이기주의’ 등을 극복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결혼한 가정은 ‘아이 데리고 밤 마실 갈 수 있는 거리’에 함께 모여 삽니다. 사회와 교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육아와 살림 주체에 중심을 둔 상징적 기준입니다. 비혼 지체들과 기혼 지체들이 <마을 수도원>에서 일정한 기간 함께 기도하며 생활하는 과정은 생활영성 수련에 유익을 줄 뿐 아니라 가족이기주의가 구조화 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가족은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기본 단위이지만, 동시에 ‘가족이기주의’는 하나님나라 백성을  세속화시키는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15. 기초공동체와 마을교회, 분립개척과 연대

밝은누리는 기초공동체 연대체입니다. 기초공동체는 7~10명 정도로 구성합니다. 깊은 사귐과 나눔, 목회상담, 예배, 공부(수련), 실천(총체적 선교)을 함께 수행하는 하나님나라 운동 기초 단위입니다. 독립된 한몸살이(교회)이면서 동시에 보편교회 본질을 내포하는 ‘교회안의 교회’입니다. 각 기초공동체가 지닌 자율성과 연대성은 소통케 하시는 성령 은총을 통해 균형을 유지합니다. 지체들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삶을 나눕니다. 서로 잘 알고 돌봅니다. 기초공동체 모임은 말씀나눔과 생활나눔, 기도와 찬양, 삶에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대화와 목회상담, 밥상나눔으로 진행합니다.

기초공동체를 토대로 대안적이고 변혁적인 마을공동체를 다양하게 만들고 연대하여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것이 기본 사역전략입니다. 새로운 기초공동체나 마을공동체를 개척할 부르심이 있는 지체들이 함께 개척 주체가 됩니다. 은사와 소명에 따라 함께 개척하고 사역을 공유합니다. 개척에 필요한 재정을 한몸살이가 함께 부담하고, 이후 자립하면 환원하여 새로운 개척 자금이나 사역 자금으로 사용합니다. 일반 재정은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은 한몸살이가 함께 부담합니다. 특정한 사람의 희생이나 자본력에 의지해 교회를 개척, 운영할 때 발생하기 쉬운 세속적 유혹을 경계합니다. 자본에 종속되는 교회 대형화, 개교회화를 방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목회와 교육도 은사에 따라 공유합니다. 은사 독점과 위계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한몸살이(교회) 형태는 지체들 자율성과 주체성을 고양하며, 다양한 은사를 개발하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또한 조직화, 대형화에 따르는 행정, 관리 등에 소모되는 역량을 최소화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삶이 잘 공유되어 교제케 하시는 성령 은총을 생활 속에서 몸으로 체험하고 고백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개교회주의는 ‘연합과 일치’라는 교회 본질을 훼손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반드시 교회세속화로 귀결됩니다. 특정한 개인 능력, 특정한 개별 교회가 지닌 역량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우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우상이 작동하는 주요한 방식에 대한 긴장을 상실하면, 결국 ‘시대우상에 종속된 교회’로 전락됩니다.

 

16.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농도상생 마을공동체’

서울(도시)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 하며 새롭고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농農이 지닌 소중함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은 도시, 농촌 어디서 시작되든 생명 토대인 농생활農生活이 지닌 온전한 가치를 깨닫고 복원하는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농農은 하늘땅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 중 근본입니다.(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생명을 살리는 모든 일이 농農입니다. 자녀 돌보고 키우고 가르치는 걸 자식 농사라 했습니다.

농農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중심으로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만들고, 소비,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 모든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농생활農生活은 농촌이나 농민이 사는 삶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고 그 생명에 의해 다시 살림 받는 생명순환에 순응하는 생활입니다. 생명 토대인 흙에 터해 생명살림農의 삶을 생명 존재방식(생명순환)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생명은 서로 살리고(相生), 서로 돕는(協力) 살림터인 마을 속에서 온생명으로 살아갑니다. 미래문명 희망은 농생활 영성, 이를 토대로 생성되는 ‘농도상생農都相生 마을공동체’에 있습니다.

농農이 지닌 가치를 상실한 도시문명은 온전한 생명 됨과 생명 상호간 평화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문명 현실입니다. 모든 관계를 상품관계로 환원시키고, 경쟁과 소비, 자본증식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도시문명이 지배하는 이런 삶은 결국 농촌까지도 도시 소비문화에 종속된 하부단위로 편입시킵니다.

도시 소비를 위한 상품생산으로 전락한 농촌 생산은 국제 식량자본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 또한 국가정책이나 도시 소비자들이 지닌 취향에 따라 농사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지어왔던 생명순환 농법을 상실한 채 급격히 노령화 되었습니다. 농토마저도 이미 부동산 투기와 화학농법으로 심각한 위협에 처했습니다. 농사, 교육, 문화, 복지 등 거의 모든 삶은 자생력을 상실하고 자본과 도시문명에 심각하게 종속되었습니다. 농촌을 종속시킨 도시문명은 생명 살림과 평화 능력을 근원에서 상실했습니다.

농촌과 도시가 연대하는 데 있어, 도시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도시 소비자가 처한 건강하지 못한 먹을거리 문화와 소비취향, 유통시장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농도교류는 문명질병을 치유하는 힘을 지닐 수 없습니다. 도시소비문명을 지배하는 자본이 유기농 시장에 확장될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가 생산이 지닌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은 생명현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삶을 총체적으로 전환시키고 추동합니다.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시작하든, 극복해야 할 과제와 희망을 동시에 품고 전환해 가는 지혜와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은사와 소명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우면 새로운 삶을 더욱 철저하게 구현해 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개인은 매우 무기력합니다. 한 몸 되어 더불어 사는 삶은 깨닫고 고백한 바대로 살도록 돕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토대입니다.

밝은누리는 이런 문제의식과 소명으로 강원도 홍천 아미산 아랫마을에 터 잡고 생명평화마을을 일굽니다. 공동체 귀촌이라는 선교 전략을 가지고 생명농업, 생태건축,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소명을 지닌 지체들이 함께 귀촌했습니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 귀농귀촌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도울 수 있는 전략입니다. 기존 마을 분들과도 잘 어우러지면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에 힘씁니다.

서울 인수마을은 청년들에게 하나님백성이 살아갈 구별된 삶과 문화를 증언 교육하고, 도시 직장 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더불어 사는 마을문화, 함께 보육하고 함께 사는 문화를 몸으로 익힙니다. 당면한 역사/사회적 실천을 수행하는 다양한 운동들과 연대합니다.

강원도 홍천 생명평화마을은 농촌에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먹고 자고 입고 즐기는 일상 생활양식 속에서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삶을 연구 교육하고 삶으로 실천합니다. 더불어 사는 마을을 토대로 자생력을 키워갑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농촌마을 생활을 토대로 청소년, 청년, 부모들이 함께 공부합니다.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한몸살이 삶의 가치와 문화를 교육하고, 스스로 주인된 삶을 만들어 가는 역량을 키우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소명입니다.

서울 인수마을과 홍천 생명평화마을은 긴밀하게 일상적으로 교류합니다. 서로 살려주는 생명 순환의 삶을 삽니다. 서울 인수마을에서 나오는 밥상 부산물과 오줌을 홍천마을로 가져와 거름으로 씁니다. 홍천마을은 뒷간에서 나오는 똥오줌과 밥상 부산물을 모아 거름으로 사용합니다. 생명순환농사로 생산한 농산물은 다시 마을밥상에 생명을 살리는 먹을거리로 돌아옵니다. 주말에는 서울에 있는 기초공동체들이 돌아가며 홍천에 가서 함께 일하며 기도하고 예배합니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농도상생 마을공동체입니다.

새로운 소명에 따라 분립 주체가 세워지고 각 지역 성격과 정황에 맞는 공동체를 일구며 서로 살리는 관계 망을 확장합니다. 자체적인 소명을 토대로 마을공동체를 세우기도 하고,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미 있는 사역을 돕고 협력하기도 합니다.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신앙공동체 운동을 다양한 형태로 돕고 협력합니다.

 

17. 새로운 꿈과 기도 : 한반도(조선반도) 영구평화지대, 동북아생명평화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삶을 회복하는 것은 한반도(조선반도)와 동북아 생명평화를 선취하고 증언하는 기도이자 실천입니다. 생명평화는 몸과 마음의 평화 속에서 시작되고, 마을 속에서 구체화되고 지속됩니다. 도시와 농촌 마을이 서로 살리는 삶을 회복하고,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 생명평화가 한라에서 백두 넘어 동북아로 굽이치길 꿈꾸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20세기 인류의 죄와 오만이 만들어낸 제국주의 침략과 분단, 전쟁과 생태계 파괴를 모두 짊어지고 아직도 신음하고 있습니다. 고난 받는 종을 통해 온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20세기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이 땅이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 폭력으로 신음하는 인류에 하나님 생명평화를 전하는 백성 되길 소망합니다. 분단과 증오의 철책을 걷어내고, 온 생명 더불어 사는 생명평화의 땅이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핵무기와 전쟁무기를 페기하고, 한라에서 백두 넘어 비무장지대가 확장되길 꿈꿉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연습을 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하나님 백성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 땅에서 전쟁한 모든 나라가 앞으로 이 땅에서 전쟁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판문점에 생명평화 기구를 세우고, 생명평화 샘물을 온 누리에 전하는 땅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좋은 통일로 만드는 것이 전환시대를 사는 우리의 중요한 사명이라 믿습니다.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통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비극의 끝자락을 따라가는 통일이 아니라, 생명평화 새 문명을 움트게 하는 통일이 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동북아와 지구공동체 생명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힘쓰는 나라로 다시 살 것입니다. ‘강력한 군사력에 토대한 평화’라는 관념은 인류가 오랫동안 속아 온 거짓 평화입니다. 끝없는 핵개발과 군비경쟁을 일으키는 토대이고, 역사 속 모든 집단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 하는 논리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실패가 검증된 ‘제국평화’입니다. 강력한 군사력(폭력)이 아니고는 평화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체념에 길들여진 정신과 관습을 넘어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 “사람의 능력이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이룰 것이다”는 하나님 말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희년과 하나님나라를 구현하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참된 ‘하나님 평화’를 믿고 세상에 증언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소명입니다. 세상 정사와 권세에 사로 잡혀 신음하는 모든 생명, 생태계가 거짓 번영과 ‘노예 된 평화’라는 굴레에서 해방되는 일에 함께 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은총은 노예 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 되어 살게 합니다. 서로 살리며 더불어 사는 생활양식을 회복하고, 하나님 생명평화를 누리는 은총이 넘쳐나길 간구합니다.

 

18. 밝은누리 사역

교육공동체 ‘밝은누리움터’ http://cafe.daum.net/maeulschool    
하나님나라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마을을 토대로 공교육과 대안교육, 자녀교육과 부모교육,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생활영성수련이 하나로 어우러진 교육입니다. 한몸살이가 깨닫고 고백한 신앙고백, 철학과 역사, 가치와 생활양식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 공유합니다. 
공동육아 도토리 어린이집(서울 인수), 공동육아 작은숲 어린이집(강원 홍천),
   아름다운마을 초등학교(서울 인수),  온마을 배움터(강원 홍천),  주말/계절/들살이 학교

생동중학교(홍천)
삼일학림(홍천) : 고등대학 통합과정, 과목 선택 학점제
     필수과목(신앙, 철학수신, 역사, 하늘땅살이(농사), 집짓기, 생활기술과 예술)
     선택과목(문학, 수학, 다른 나라 말글, 과학, 검정고시, 수능)
     자율과목(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기획해서 공부),  독립학습(2년차 이후 1년 이상)

하늘땅살이움터: 農生活(농생활)연구소+생활영성수련원 http://cafe.daum.net/agimazung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 갈 힘을 키우고 수련합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하늘땅살이(농사) 하며, 농촌, 농업, 농사에만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생활양식, 농생활을 실천하고 연구합니다. 생명순환 농사를 정직하게 실천하는 자립소농을 키우고 연대합니다. 다양한 생물종들이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해, 그리고 식량자본과 GMO에서 자유로운 농사를 위해 토박이 씨앗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에 함께 합니다.  
☞ 생명순환 농사와 토박이 씨앗, 생명밥상과 밥상부산물, 생태뒷간
   농생활영성수련, 성경통독수련
 
공동체지도력훈련원 http://cafe.daum.net/welife111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고, 생성을 지원 협력하는 훈련기관입니다. 다양한 생활과 사역 현장에서 기초공동체를 생성하고 이를 토대로 하나님나라 운동을 수행하도록 돕습니다.

청년지도력 소통과 대안  http://cafe.daum.net/lordyear
일상생활과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일관성 있게 고백하고 실천하는 기독청년 지도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부-실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 생활영성을 핵심 주제로 성서, 철학, 역사 등을 함께 공부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생태건축 흙손’ http://cafe.daum.net/soil-hand
생명을 살리는 건축, 자연과 호흡하며 생활 터전에 적합한 아름다운 건축을 연구하고 노동합니다. 나무와 흙, 돌 등 생활 터전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건축합니다. 다양한 생태건축 공법, 자연 에너지 등을 연구하고 적용합니다.
 
아름다운마을밥상(서울 인수마을)  -  친환경 유기농 마을식당 
오솔길 작은밥상(강원 홍천마을)  -  마을 분식집
마을찻집‘마주이야기’(서울 인수마을)  https://www.facebook.com/majueyagi
          ‘고운울림’(서울 한신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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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선교  -  생명평화연대 http://welife.org 
하나님나라운동 가치와 문화를 시민사회에 증언하고 소통합니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한반도 영구평화 영세중립 통일을 통한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운동, 언론개혁, 교회개혁, 인권운동, 지역사회 개혁과 복지 등에 함께 합니다.

 

19.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몸살이, 한 길을 걸으며...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상이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 “이정도면 돼!” 이런 생각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며, 하나님나라 운동이 지닌 고유한 창진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속삭임입니다. 먼저 산 사람들 경험이 하나님나라 도상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모두 다음 세대 새로운 도전을 추동하는 지혜로 작용해야 합니다.

  신앙하는 삶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또한 어떠한 성공에 대해서도 자랑할 것 없이, 그저 하나님나라를 현실로 사는 삶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 기준을 자기가 제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서 가르침을 겸허히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은 늘 애통함과 가난함에 처해있습니다.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에 주시는 은총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성서 가르침을 우직하게 따르는 연약한 자들이 겸손히 순종하고 서로 돕고 섬기는 삶을 통해 하나님나라는 전진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믿음 사건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믿는 자에게 보이는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믿는 만큼 보이고, 믿는 만큼 현실로 살 수 있는 믿음과 은총 사건입니다.

  믿음은 모호함을 뚫고 가는 신비로운 힘입니다. 잘못된 믿음은 가볍고 무책임한 삶을 만듭니다. 믿음이 지닌 깊이와 힘은 하나님 사건에 직면하는 침묵과 맞닿은 곳에서 드러납니다. 침묵과 맞닿은 믿음은 진리를 좇아 사는 삶에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진중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침묵은 생명 질곡을 이겨나갈 수 있는 신비로운 힘입니다. 문명 속도에 밀려 바빠진 호흡, 기존 관습에 익숙한 삶으로는 깨달을 수없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힘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한 몸 된 삶을 살며 깨닫는 것은 오직 하나님 은총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사귐, 몸짓, 표정, 눈물과 웃음, 고뇌와 희망, 함께 나누는 밥상, 맞잡은 손을 통해 살아있는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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