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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에서 마태수난곡을 듣다

기사승인 2019.04.12  13: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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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었습니다. 몇 주 전 서울역 앞 작은 카페 문 앞에 수줍게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만사를 제쳐 두고 아내와 함께 남산자락에 위치한 전통 있는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네덜란드에서 온 팀이었습니다. 사순절 기간 중에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회장이 아닌 교회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또한 하멜의 후손들이 기독교가 이렇게 기성 종교로 자리 잡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을 법한 동방의 나라를 찾아와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예배당은 신학적으로나 음향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마태수난곡의 음악소리를 공명시키는데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공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성장을 이룬 나라, 그 짧은 순간에 교회가 교회됨을 잃어버리고 예루살렘 성전처럼 무너져가고 있는 나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시련을 견뎌 냈지만 민족 분단의 비극으로 인해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나라의 수도 중심에서 듣는 마태수난곡은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또한 이 교회에 남아있는 신앙인들의 흔적, 암울하던 시절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아 몸 살라 펼쳐 내고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의 흔적들이 주님의 수난의 이야기, 그리고 바흐의 음악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적 하모니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의미와 십자가의 사랑과 십자가의 능력을 바라 볼 때, 바흐의 수난곡을 연주하는데 세상에서 이보다 더 적합한 장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말 가사 번역이 없던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내용을 이해 할 수 없어서 중간 쉬는 시간에 자리를 떠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회중석 앞에 놓여 있는 성경의 마태복음 26장만 펴놓고 들어도 절반 이상은 이해하며 들을 수 있었는데 참 아쉬웠습니다. 옆자리의 아내에게는 음악이 바뀔 때마다 해당 구절을 짚어 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에 마태수난곡을 전하는 사역에 더욱 사명감을 갖고 현재 ‘꽃자리’ 웹진을 통해 연재하고 있는 마태수난곡 평전을 빨리 완성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 날 연주의 백미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는 장면과 ‘사랑 때문에 아무 죄 없으신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려 하신다’라고 노래하는 소프라노 아리아 ‘Aus Liebe’였습니다. 세 시간이 넘는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제가 한 순간도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치는 대신 진정한 주인공이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모습들, 조용히 기립하여 연주자들이 떠날 때까지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무언의 감사와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의 성숙한 모습은 이 날 연주의 일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피날레였습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입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조용히, 부활의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조진호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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