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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서범석

기사승인 2019.08.11  01: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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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 74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패악질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명분없는 도발을 대하는 국내 친일세력의 분별없는 대응 때문이다. 심지어 대기업 한국콜마의 기업주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몰상식이 도를 넘었다. 여전히 독립운동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물론 시절이 수상하니 틈을 노려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임을 감안하면 그 속내를 모를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시대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데서 온 손해는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 감수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한국콜마의 무분별을 심판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나도 불매운동에 동참하려고 상품 목록을 뒤졌으나 ‘헛개수’(CJ헬스케어) 외에는 전혀 아는 상품이 없었다.

  기업이나 언론의 잘못은 불매운동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고, 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치권의 태도 역시 다음 총선에서 평가하면 될 것이다. 다만 몇몇 개인이나 유투버가 보이는 퇴행은 역사인식의 부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천박하다. 역사교과서의 검인정 폐지와 국정화를 둘러싼 정권의 시비와 곡절을 다툰 것은 몇 년 전 일이다.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뉴 라이트의 건국절 논쟁도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시대정신에 공감할 적절한 방법을 찾는다. 일본인 미키 데사키가 만든 영화 ‘주전장’(主戰場)이나 얼마 전에 개봉한 ‘봉오동 전투’를 보는 것은 생활형 참여일 것이다.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방문하는 것은 좋은 교육장이 될 것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문제 기업의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불볕더위에도 광화문으로 나서기도 한다. 아무 것도 안하면서 광복절을 맞는 것은 정말 면구스러운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해외동포들의 마음은 더욱 뜨겁다. 그들의 이주와 이민이 일제 강점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의 경우가 직접 피해 당사자라면, 해방 이후에도 간접 영향권에 들고 있다. 세계에 흩어진 동포들은 해마다 ‘8.15’를 가장 큰 행사로 기념하고, 모국어로 신문을 발간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한인이 사는 곳마다 한인교회는 물론 한글학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독립운동가 서범석은 독일 중부지역에 사는 한인이다. 그는 1970년대에 광부로 독일에 왔고, 계약을 마친 후에는 피아노 회사에서 기술을 배웠다. 고전적이지만 낡은 피아노를 새롭게 개선하는 일은 그가 전문이다. 그가 독일제 피아노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옛 피아노의 일부였을 고풍스런 나무로 만들어준 등대(燈臺)는 내게 보물과 같아서 지금 색동교회 예배를 밝히는 촛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서범석을 독립운동가의 반열로 부르는 이유는 그의 한글사랑 때문이다. 항일 독립운동가 중에서 한글학자가 많듯이, 지금도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단 애국자로 치하할 일이다. 나는 이러저러한 글을 쓸 때마다 서범석의 눈치를 살핀다. 그와 작별한 지 17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한글맞춤법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복흠교회 주보의 칼럼은 다음 주일이면 그의 빨간색 교정펜에 붉은 상처를 입은 채 돌아왔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어 말투와 문장을 백안시하였다.

  습관적인 일본식 조사 ‘~의’의 그릇된 사용은 으레 빨간딱지를 받게 마련이다. 한자어 ‘~적’에 대한 부적절한 인용과 영어 번역투의 문장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마치 한힌샘 주시경이나 이수열 선생의 대리인처럼 행세하면서 바른 한글쓰기를 강조하고, 쉼 없이 반복한다. 여러 사람이 그의 문턱과 잣대를 넘지 못해 다툼을 피할 수 없었다. 통일(統一)이 아닌 일통(一統)으로 써야 한다고 할 때마다 달리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그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교정법을 의식해 글을 쓰면 문장이 깨끗하고 맑다. 행여 내 글에 그런 미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오로지 한글사랑 서범석 덕분이다. 교회 집사인 그는 한글성경 중 개역한글판, 표준새번역, 공동번역을 비교하여 대조표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올바른 문장을 칭찬하는 한편 맞춤법에 어긋나는 잘못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붉은 펜을 들었다.
       
  당시 시국이 어질어질할 때면 종종 목회자들이 연명하여 ‘1천인 선언’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곤 하였다. 한겨레신문 하단의 모래알 같이 작은 글자들 틈에서 담임목사의 이름을 찾아내어 크게 자랑스러워하던 그였다. 한일관계가 어수선 한 지금 한글사랑을 마치 독립운동 하듯 부르짖던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제 나라에 살면서도 자기 이름값도 못하는 그런 부류들과 달리 남의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의 홍수 속에 살면서 한글사랑을 고집하며 살려는 기개는 얼마나 대견한가? 그래서 진정 독립운동가이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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