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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는 두고 차라리 내 목을 쳐라

기사승인 2020.07.01  23:21:47

남재영 goodpas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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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죄악이다
이동환 목사는 두고 차라리 내 목을 쳐라


자랑스런 무지개교회-빈들공동체

이동환 목사가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축도를 했다하여 누군가가 이 목사가 소속된 경기연회가 기소를 해서 교회재판정에 세운다 한다. 그러자 목사직을 면직시켜야 한다며-망나니 춤을 추는 이들이 아주 물을 만난 듯이 설쳐대고 있다. 가관도 아니다. 축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이가, 축도 한번 했다고 목사를 면직 시킬 만큼 스스로 목사가 그리 싸구려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면직타령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의 그런 논리라면, 동성애자 옹호에서 이동환 목사는 축도는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빈들공동체는 매 주일 주보에 동성애자를 환대한다는 표시로 작은 무지개를 고정적으로 인쇄해 두고 있다. 헨리 나우웬은 환대를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빈들공동체에서 이성애자들과 동성애자를 모두를 환대하면서 목회를 하고 싶다. 동성애자가 참여한 예배에서 나는 매주 그 동성애자를 위해 축도를 할 것이다.

 

   
 

 

2018년 6월 경 성소수자 활동단체인 <무지개예수>로부터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무지개교회가 되겠느냐는 요청을 받았다. 이성애자인 내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사실 <무지개예수>도 몰랐다. 그래서 검색을 해본 결과 “<'무지개예수>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및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으로서, 성소수자 인권이 교계 안팎의 다양한 영역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지개예수>로부터 요청을 받고 난 다음 나는 몇 주간을 생각하다, 이 사안은 담임목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2018년 7월22일 주일에 교인전원회의를 소집했다. 빈들공동체의 교인전원회의는 입교인 전원이 참여하는 임시당회로 보면 된다. 이 교인전원회의에서 <무지개예수>로부터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무지개교회’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을 알리고 교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인들의 판단의 근거는 명확했다.

우리 빈들공동체 교인들은 모두 이성애자들이다. 교인들의 분별은 동성애자들을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혼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개, 돼지 같은 존재로 봐야할 것인지가 판단의 근거였다. 교인들 모두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그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죄악이라는 사실을 함께 공유했다. 하나님은 교회에 동성애자들을 차별할 권한을 주신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영혼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로 그 어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비록 우리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우리 빈들공동체의 일원으로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환대해야한다는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들도 빈들공동체에서는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영적 동반자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빈들공동체 전원회의의 결의였다. 그리고 난 다음 혹여 우리 안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그 때 가서 우리가 기도하고 토론하면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 우리 교인들의 결론이었다. 남선교회와 여선교회 그리고 동성애자를 위한 제3의 선교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서 우리 빈들공동체교회는 기쁜 마음으로 무지개교회가 되었고,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예배를 위하여 교인들이 받아든 주보 표지에도 우리가 무지개교회라는 표식으로 작은 무지개를 넣고 있다.

 

   

빈들공동체 주보 오른쪽 상단의 무지개는 동성애자들을 환대한다는 표시이다.

 

이 목사가 면직이면 나는 능지처참을 당해야 마땅하다


이동환 목사가 경기연회에 고소되어 기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목사에게 목사직을 박탈해야 된다고, 그 모가지를 자라야 한다면서-망나니 칼을 들고 시퍼렇게 설쳐대는-반이성적인 현상은 한심하지도 않다. 그게 우리 감리교회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고 싶다. 축도를 해준 이동환 목사가 면직이라면 나 같은 목사는 능지처참이나 부관참시 정도 해야 그대들 직성 출리지 않겠는가. 그대들이 보기에도 새 발의 피 같은 이동환 목사는 그냥 두고 내 목부터 먼저 쳐라. 나는 동성애자들의 영혼을 보살피고 축복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대들의 그 혐오와 차별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우리 교인들-임시 당회에서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와 같은 영혼들이라, 교회가 문을 열고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자는 결의를 한-우리 교인들은 모두 감리교회에서 다 쫒아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동성애를 옹호를 넘어 환대하기로 결의를 한 우리 빈들공동체교회는 교회 문에 못질을 하고 폐쇄를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른다. 동성애자를 좀 알아보자는 취지로 2016년 4월28일 NCCK 2층 조에홀에서 한국교회인권센터 주관으로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하여 이야기마당을 연적이 있다. 그 때까지도 동성애에 대해서 별반 큰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워낙 교회가 혐오와 정죄를 하길래 NCCK 정의평화위원장이던 나도 내 생애 처음으로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그 자리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벌떼처럼 달라 들어 김조광수 감독을 향해 쏟아낸-기도의 형식을 빌은 그 언어폭력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교인들의 반대로 김조광수 감독의 이야기마당은 중간에 마쳐야 했다. 인분봉지를 준비해서 김조광수 감독에게 투척하려고 한다는 정보가 있어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김조광수 감독은 그 자리를 빠져나가야 했다. 그날 중간에 중단된 이야기마당이었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김조광수 감독의 고백이 있었다. “동성애자 신앙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곳이 바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라는 고백이었다. 그의 그 고백은 지금도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다. 커밍아웃을 하는 그 순간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함께 끝난다고 했다.

 

   

2016년 4월28일 NCCK 2층 조에홀에서 한국교회인권센터 주관으로 김조광수 감독(가운데 모자 쓴 이)는 경찰의 경호를 받으면서 귀가했다.

 

아픔과 상처를 가진 이들을 교회가 보듬고 감싸면서 위로를 해야 그게 교회 아닌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로만큼-같은 교인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아야지 그것이 교회가 아닌가. 거룩한 친교를 상실한 교회 안에서-자신을 숨기고 감추어야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교회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거룩한 성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신학적 사고와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교회는 온전한 교회가 아니다.

목사에게는 축복기도의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교인들이 새 차를 뽑았다고 담임목사를 불러 축복기도를 해달라면 당연히 축복기도를 해준다. 이제는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들을 통해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그 옛날에 시골 할머니 집사님이 목사를 찾아와서 암소가 송아지를 낳는데 목사님 와서 새끼 쑥쑥 잘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류의 부탁은 종종 있었다 한다. 그 부탁을 받은 목사는 당연히 가서 애기 밴 암소 고삐를 붙잡고 축복기도를 했다. 이것이 어려운 시절의 목회를 하셨던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솔찮게 들을 수 있었던 그 시대 농촌 목회 에피소드였다. 새 차를 위하여 축복하고, 새끼 낳는 암소를 위해서는 축복기도를 해도 되는데 동성애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느 동네의 상식인가.

 

동성애 문제-감리교회공동체는 한번도 토론하지 않았다. 

 

이런 표현은-동성애자들에게 정말 죄송한 표현이지만-예수님 당시 한센병자들은 사람이라도 사람의 자리에서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는 움막에서 들짐승처럼 살아야 했었다. 그가 사람들의 동네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나는 문둥병자요’라고 소리치면서 가야했다. 어쩌다 모진 인간들을 만나면 한센병자라는 하나의 이유로 혐오의 돌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런 한센병자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오늘 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는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한센병자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유대인들과 전혀 달랐다.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혐오와 배제와 차별과 정죄하는 오늘 교회에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스스로 질문해보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 중 목회자 징계 조항에 동성애 옹호 여부를 명시한 곳은 우리 감리교회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동환 목사와 함께 성소수자 축복식 집례를 했던 임모 목사와 김모 신부는 이 목사와 달리 소속 교단에서 별다른 보복을 당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다 감리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사단은 2015년 입법의회에서 일반재판법 제3조 8항에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가 삽입통과 되면서 이동환목사의 처벌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당시 입법희회 장정개정위원장의 입장을 예의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교단법에서 동성애 지지자 처벌을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 김충식 위원장은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성애 관련 처벌 입법에 대해서)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감리회는 원칙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넣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성 소수자 지지 활동을 해 온 감리회 목사나 신학생들에게도 소급 적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앞으로 논란이 일거나 하면 다루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뉴스엔조이 1월6일자 기사 인용)

김충식 목사는 두 가지 과오를 저질렀다. 첫 번째는 논란이 되고 있다면 논란을 종식되고 난 다음에 입법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감리회는 원칙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동성애 관련 입법을 넣은 것이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내가 알기에는 감리교회는 한 번도 공교회 차원에서 동성애 문제를 토론한 적도 없다. 동성애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은 단세포들이나 하는 짓이다.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성정체성의 문제이다. 이를 찬반으로 끌고 가는 것도 문제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김충식 목사의 말처럼 감리교회가 입법을 하기 이전에-언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정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 말한 김충식목사의 워딩은 명백하게 거짓증언이다.

입은 하나님께서 얼굴 가죽이 모자라 뚫어놓은 것이 아니다. 논란이 있을 때 서로 토론을 하라고 입이 있는 것이다. 감리교회는 큰 교단이다. 공교회는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충분하게 연구하고 토론을 한 다음 입법을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이다. 지금은 이동환 목사를 징계할 때가 아니다. 이동환 목사를 통해서 우리가 상식으로 돌아갈 때이다. 논란이 되면 법의 문제점을 다루겠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그 법 때문에 논란이 생겼다면 이제야 말로 우리 감리교회는 동성애문제로 토론하고 연구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동성애문제에 대해서 감리교회는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선교적인 차원에서 봐야하는지, 아니면 협오와 배제와 정죄를 해도 무방한지. 감리교회공동체의 총의를 구하는 민주적인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정말-동성애 논란을 우리 감리교회공동체 안으로 소환하게 만든 이동환 목사에게 감리교회공동체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논란이 생기면 다루겠다는 장정개정위원장 김충식 목사의 입법설명은-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입법을 해놓고 스스로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감리교공동체를 기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망에 의한 동성애 입법은 원인무효이다.

감리교회 공동체 안에서 단 한 번도 동성애 문제와 관련된 상식적인 토론이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동환 목사 축도건 을 계기로 감리교회가 이성을 회복하고 동성애문제를 교단적으로 정면에서 다루어야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에 응답하는 감리교회의 태도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동성애 문제를 교단 안의 논란으로 소환해온 이동환 목사에게 감사한다.

물론 이 목사의 목을 따야 한다는 그대들에게 감사를 강요하진 않지만-그대들이 적개심을 가지고 들고 있는 그 검을 내려놓기를 정중하게 요청한다. 죽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그대들이 들고 있는 그 칼로 빈들공동체의 담임목사인 내 목을 먼저 쳐라. 그대들의 눈으로 보기에도-그대들이 범과라고 말하는 그 웃기는 짜장면이 이동환 목사보다 내가 훨씬 더 크고 엄중하지 않나.

불의한 법은 그 법을 어김으로 정의를 세워야 한다. 이게 내가 믿는 양심의 법이고 하나님의 법이다.

 

 

남재영 goodpas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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