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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라

기사승인 2020.08.09  14:15:32

황광민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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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편 1-6절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라

 

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2절,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 본문은 새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이는 시편의 기자들의 신앙고백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95:1)라고 하였고,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를 베푸셨음이로다”(시98:1)라고 하였다.

*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인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다(하야동사, 미완료).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능력으로 구원하셨다.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또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영생으로 인도하신다.

*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성취되었다. 6.25동란에서 우리나라를 구해주신 것도 은총의 선물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언제까지나 그를 송축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다.

 

나. 구원의 감격이 식으면 안 된다.

1절,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 성도는 날마다 새 노래로 구원의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 여기서 새 노래는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요한계시록에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라고 하였다. 여기서 구원의 감격은 식고 형식적인 찬양과 경배만 남은 것이 심각한 문제다.

* 그런데 ‘새’(하다쉬)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한다’(하다쉬). 형식적인 찬양과 경배로는 자신의 심령을 새롭게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구원의 감격이 식으면 쉽게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 마라의 우물에서 있었던 원망사건을 참조하라(출15:22-26).

*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으며 영광을 돌렸다. 그녀의 행동은 구원의 감격을 드러낸 모델이다. 주님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그녀가 한 일이 전해지기를 원하셨다. 구원의 감격을 갖고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다. 구원의 감격이 식으면 안 된다.

 

다. 구원의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

3절,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 구원받은 성도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할 뿐만 아니라 그의 위대하심을 백성들 가운데에 선포해야 한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b)라고 하였다. 여기서 ‘덕’(아레테)은 하나님의 신적 권능과 탁월함을 말한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방식은 안 된다.

* 그런데 ‘선포하다’(싸파르)는 ‘돌 위에 글씨를 새기다’라는 뜻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증인’(마르튀스)은 확실한 ‘증거’(마르튀스)를 제시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삶의 행동으로 보여주어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마5:16).

*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려면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신들은 우상에 불과하다(5절 참조). 또 세상의 어떤 학문적 지식과 물질이나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도 더 훌륭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라. 하나님을 높이면 영광을 얻는다.

6절,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그의 앞에는 존귀와 위엄이 있다. 그리고 그의 성소에는 능력과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서 ‘존귀’(호드)는 ‘탁월함’을, ‘위엄’(하다르)은 ‘영예’를, ‘능력’(오즈)은 ‘강함’을, 그리고 ‘아름다움’(티프아라)은 ‘화려함’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 이것들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진선미의 근본이다.

* 그런데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몸소 드러내면 자신이 하나님의 탁월함, 영예, 강함, 그리고 화려함을 입게 된다. 하나님의 증인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상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고사성어에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누구를, 또는 무엇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의 성품에 참여하고, 그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높임을 받게 된다.

 

황광민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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