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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한 그릇에 담길 사랑

기사승인 2022.05.19  23:07:49

이광섭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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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때아닌 국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수 기계 논쟁이지요. 기나긴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잦아들면서 주일 오후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일 공동식사였습니다.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안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안은 예전처럼 선교회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가 나서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를 않으려 했고,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았지요. 할 수 없이 간편식으로 김밥을 준비해서 두어 주일 먹어보았지만,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가고 만족도는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국수 기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천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이 코로나 이전부터 이 기계를 사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십에서 수백 명분의 소면을 한꺼번에 삶아서 말아낼 수 있도록 제작된 잔치국수용 기계. 단체 급식이나, 교회에서 주일 공동식사에 사용하도록 특화된 국수 기계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유용한 기계가 있었다니! 너무나 반갑고 솔깃했습니다. 더구나 제천 교회에서는 매주 국수를 먹다가 일 년에 몇 차례, 이를테면 절기나 특별 기념 주일 등에는 밥상을 푸짐하게 차려서 공동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마치 잔칫날과 같아서 교인들의 기쁨도 크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국수 기계만 사들이면 공동식사 문제는 다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토요일, 교회에 들른 장로님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국수 기계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다들 좋다고 했습니다. 간편하게 공동식사를 준비하고, 식사 후에 설거지며 처리해야 하는 잔일도 대폭 줄어드는 것 아니냐며 아주 좋은 방안이라고 했습니다. 자신 있게 여선교회 회장님과 몇 명의 임원들에게 국수 기계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국수 기계에 대해 긴가민가했습니다. 흔히 간편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국수가 사실은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만들기 힘든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여성들은 국수를 삶아내는 전 과정을 소상하게 떠올리며 물었습니다. 끓는 물에 소면을 넣기만 하면 한 과정에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그 힘든 품을 기계가 다 처리해 주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수를 꺼내서 국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국수 기계를 직접 보지 못한 데다가,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니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수 기계를 직접 보러 가자고 했지요. 보고 나서 국수 기계를 사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국수 기계를 당장 사자는 기운이 꺾이니까 부수적인 문제들이 슬금슬금 올라왔습니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들을 위해서 따로 밥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당연히 나올법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임원들의 이야기 속에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였지만, 속에서는 계속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목사님, 코로나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예배와 모임을 지속하는 건가요? 예전처럼 교인들의 헌신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날 여선교회 임원들은 자신들이 답답하게 여기는 이 문제를 목사인 저와 이야기하고, 나름 분명한 답을 찾고 싶어 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이래저래 답답한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여선교회 회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권사님들 몇 분이 자기들 여선교회 지회에서 공동식사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모으셨대요. 6월부터 올해 말까지 권사님들이 매 주일 국수를 하신대요. 빨리 김치 좀 담갔으면 하시네요. 그리고 목사님이 상황을 보면서 서둘지 마시고, 천천히, 제일 좋은 코로나 이후의 방안을 찾아내셨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아, 이보다 더 고마운 소식이 있을까요? 겉으로 드러난 질문 앞에 마음 불편함을 느낀 목사보다 권사님들의 마음씀이 훨씬 낫구나 싶은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덕분에 교회 공동체와 목사에게 7개월간의 엄청난 말미가 생겼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땀 흘리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권사님들 덕택입니다. 눈을 감아보니 권사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런 결심을 하였는지 훤히 보이는 듯합니다. 권사님들이 매 주일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을까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길 권사님들의 사랑이 우리 교회 공동체의 든든한 생명의 자산으로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 

이광섭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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