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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은 어디에 있을까?

기사승인 2022.07.03  13:42:57

최용우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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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같은이야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 루드베키아(사진:최용우)

7265. 하늘 문은 어디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다른 세계로 바뀔 때 동굴을 통과한다든지 물웅덩이에 새로운 세상의 입구가 있다든지 하는 장치를 설정합니다. ‘나니아 연대기’라는 동화에서는 옷장 속이 나니아로 드나드는 통로였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책을 읽고 옷장을 죄다 열어보다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었습니다. 
지난주 설교가 ‘엘리야’였는데, 엘리야의 삶을 살펴봤더니 엘리야는 ‘불수레와 불 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왕하2:1-14)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구름 사이로’ 올라가셨고(행1:8-11)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구름 사이로’ 오신다는데, 그렇다면 ‘다른 세상’과의 통로가 ‘하늘’에 있는 셈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그 ‘열린 하늘 문’으로 올라가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다고 합니다.(계4:1,계19:11)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보여도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시는 것 아닌가 하여 깜짝 놀랐다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문’은 ‘차원’의 얘기입니다. ‘하늘 문’을 저 푸른 창공에서 찾아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리 올려다 보아도 저 하늘에는 오존층이 파괴된 구멍만 있을 뿐입니다. 하늘 문이 하늘에 있다는 생각은 3차원 ‘공간’개념의 이해일 뿐이며, 실제로는 저 푸른 창공의 하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늘 문’은 저 창공에 뚫려있지 않습니다. 

   
▲ 도서관(사진:최용우)

7266. 하늘 문은 여기에

우리나라도 드디어 우주 로켓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자력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7번째 국가라고 하네요. 지구는 땅에서 대략 1000km 정도까지 중력의 영향권에 있고 그 이상 넘어가면 지구에서 중력권을 넘어갈 때의 속력과 방향으로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영원히 영원히 쭉 날아가버리지요. 우주 배경의 영화에서 우주선이 우주 공간을 자동차 운전하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지요.
인간들은 하늘 저 너머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높이 올라가기 경쟁을 벌입니다. 인간들이 바벨탑 높이 쌓기부터 오늘날 빌딩 높이 짓기, 우주 경쟁까지 끊임없이 하늘 높이 올라가 봤지만 거기에 천국은 없었습니다. 천국은 저 하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늘에 ‘하늘 문’도 없지요.
천국은 어떤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서로 겹쳐져 있습니다.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물고기는 어항 속에서만 살고 어항 밖에서 사람들이 물고기를 바라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공기’에 담겨 있습니다. 공기와 상관없는 훨씬 큰 보이지 않는 4차원의 영(0)이 공기의 3차원 세상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이 나왔다’(히11:3)고 합니다. 영의 눈이 열리면 그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 문’이지 어떤 물리적인 구멍이 하늘에 뻥 뚫려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하늘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조상님들은 그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저 하늘 위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그렇게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 (사진:최용우)

7267. 눈이 밝으면

인간은 지식과 머리로는 이 세상이 결국에는 다 무너지는 모래성인 것을 알면서도 ‘지금’이라는 생각과 ‘잠시’라는 느낌의 착각 속에서 세상에만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있는 ‘빛’이 어두워 천국이 우리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는 ‘보화’라는 것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13:45-46)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속눈이 밝아져서 천국을 보고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하지 말라고 말려도 자동으로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눈과 마음의 빛이 어두워 예수님이 눈앞에 계시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저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때문에 울고 웃을 뿐입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4-35)
이 세상이 물리적으로 실체적인 세상이듯이 영의 세계와 천국도 다양한 존재들이 실존하며 그 세계의 이치와 법과 질서가 존재합니다. 영의 세계는 물리적인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합니다. 눈이 열리면 그런 것들이 보이지요. 그렇게 ‘눈 뜸’이 바로 ‘하늘 문’입니다. 눈을 감으면 안보이고 눈을 뜨면 보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문’을 보기 위해서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두워서 ‘하늘 문’이안 보이지 아니한가 보라.(눅11:35)고 했습니다. 끝!  

   
▲ 포도(사진:최용우)

7268.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4:8-9)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가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행동’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표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보편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방 안에 촛불과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 있다고 가정을 하면, 우리의 보석을 향한 사랑이 촛불이고, 보석의 찬란한 빛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촛불은 꺼질 수 있지만 보석의 찬란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촛불을 보석에 가까이 댈수록 보석은 더욱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워메, 그런 보석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몰루것네. 
인간의 사랑은 감정적입니다. 마치 수로를 타고 내려가는 물길같습니다. 콸콸콸 소리를 내거나 무엇인가에 부딪쳐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를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넓은 강과 같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 봅시다.

   
▲ 등산(사진:최용우)

7269.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영(0)이시며 비물질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같은 물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으며, 그런 행동은 우상숭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의지와 지성과 감정’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피조물 가운데 드러내시려고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 안에 ‘생기(생명의 기운)’를 불어 넣으셨는데 ‘의지와 지성과 감정’ 같은 생기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수 있고 또 그 생기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기가 빠져나간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그 어떤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기가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 있어도 죽은 좀비입니다. 좀비 영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서자기의 아들을 내어주시어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게 하시고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개별적이고, 선택적이고 구속적입니다. 자신의 ‘의지, 지성, 감정’으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서 그 예정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을 다 사랑하신다고 해도 모든 인간들이 다 그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인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용우  https://cyw.pe.kr
 
♥2022.7.3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최용우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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