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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하며 살면 안 되나?

기사승인 2023.05.26  01:37:53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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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튀어오르듯 가뿐하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명 덩어리들!’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저 가벼운 탄력성을 어느 결에 잃어버린 자의 시샘이다. 시샘이지만 마음에 그림자가 남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듯 막연히 기뻐할 뿐이다. 가끔 즐거운 일을 만날 때도 있지만 마치 추처럼 마음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들이 있다. 멜랑꼴리라 해도 좋고 무거운 마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옛 지혜자는 “만물이 다 지쳐 있음을 사람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시비곡직을 가리는 말들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다. 사람 사이를 횡단하는 말들은 집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의 진실을 담보하지도 못한다. 말들이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말대로 바야흐로 말의 복수가 시작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유할 능력이 없을 때 사람들은 판단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어느 편인지, 입장이 뭔지 밝히라는 다그침은 삶의 미묘한 지점을 사유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스인들의 지혜인 에포케(epochê)를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통념에 괄호를 칠 때 세상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허만 멜빌의 소설 주인공인 필경사 바틀비의 말이 입가에 맴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그는 행위를 거절함으로 시스템의 가면을 찢는다.
   
울울한 마음을 달래며 길을 걷는 데, 손에 검은 비닐 봉투를 든 아이 하나가 뭐가 그리 좋은지 팔랑팔랑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가는 것일까? 조금 걷던 아이가 건물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유심히 보고 있다. 노란색 민들레였다.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의 풍경이지만 아이는 마치 기적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을 잊은 것 같았다. 해찰하는 그 아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뭔가를 유심히 본 적이 언제였던가. 예수는 일상의 근심에 사로잡힌 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라고 권했다. 유심히 바라봄이야말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길들이는 시간의 횡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윤석중 선생님의 ‘넉점반’이 떠올랐다. 아기는 엄마 심부름으로 가겟집에 가서 ‘시방 몇시냐’고 묻는다. ‘넉 점 반이다’. 아기는 ‘넉 점 반 넉 점 반’ 되뇌며 집에 가다가 물 먹는 닭을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하고 가다가 개미거둥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하고 걷다가 마침 한들거리며 나는 잠자리를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길가에 피어난 분꽃을 입에 따물고 니나니 나니나 놀다가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가서는 엄마에게 해맑게 말한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아기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시간을 타고 논다. ‘넉점반의 시간’을 잃어버려 우리는 늘 분주하다. 분주하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산다. 우리 삶이 기적이고 선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광막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에서 내가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처럼 놀라운 기적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날마다 직면하는 잗다란 일들을 처리하느라 버둥거리는 동안 우리는 더 큰 세계를 망각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랍비는 우리가 기적들 사이를 앞 못 보는 사람처럼 무심히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권한다. 장엄한 세계, 숭고한 세계와 만나지 못할 때 우리 정신은 납작해진다. 삶이 무겁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경외심의 부재 혹은 결핍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해찰하며 살면 안 되나?
 
속도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익숙하지만 잊고 있었던 세계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물결을 어루만지는 햇빛의 반짝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구름, 잊고 있던 무한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별빛, 흘러가며 사람들의 온갖 삶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강물, 다양한 식물과 동물 세계들, 그리고 저마다 세상의 중심인 사람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돌연 세상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김기석/청파교회

(* '월간 에세이' 5월호 원고입니다)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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