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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두르며

기사승인 2023.06.04  00:35:06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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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보는 눈을 뜨다’를 부제로 한 <상징>(KMC, 2021)을 출간하고 나서 뜻밖의 반응을 들었다. 손성현 목사는 평소 자신이 하려던 작업이라면서 “어쩌면! 생각하던 컨셉과 똑 같았다”고 놀라워하였다. 과찬이었다. 그는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학위를 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애경 전시회(인사동 is 갤러리)에서 만나 다시 ‘상징’을 화제에 올렸다. 내게 후속 작업 의사를 확인하고 나서 그가 <상징> 작업을 계속 이어가기로 하였다. 기대가 크다. 

  돌아보면 목회하는 동안 늘 상징의 옷을 입히려고 하였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성경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분으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것은 상징을 통해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보이든, 감춰져 있든 얼마나 많은 상징을 사용하는가? 2010년 색동교회 개척 후 가장 여유 있는 것은 시간뿐이라 ‘월간 기독교세계’에 상징을 주제로 글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지면을 요청하여 꼬박 3년을 진행하였는데, 이듬해부터는 고맙게도 컬러 면을 할애해 주었다. 

  교회는 우리가 지닌 그리스도교 신앙 그 자체로 승부해야 함에도 내적 동기와 감동을 신앙공동체 밖에서 방식을 찾는 경우가 많다. ‘예배와 절기’는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인간에게 주신 두 가지 축과 같다. 예배가 성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면, 절기는 노동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축을 전개하면서 온갖 모형, 이미지, 상징을 활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다양한 비유와 예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셨다.

  동방정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는 비록 예배의 고유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교회력에 따른 절기 문화는 모두 같은 유산을 여전히 품고 있다. 더 나아가 저마다 민족문화와 접목하면서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그리스도교의 신앙자산이 되었다. 일찍이 종교개혁 전통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성호경, 성인과 성인력, 각종 눈에 보이는 시각적 예배 언어를 중지하였지만, 그렇다고 상징마저 없앤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회 전래는 예전과 상징 등 문화적 옷을 벗은 채 교리와 말씀 중심의 종교로 이 땅에 찾아왔다. 여전히 문화적 빈곤에 머물러 있는 한국 개신교회의 한계는 태생적이다. 경험은 있되 문화가 없다. 우리가 교회 안팎에서 우리 시각으로 그리스도교의 한국적 이미지를 찾는 것은 단지 토착화작업이란 특별한 시도만이 아니라, 세계교회의 보편 경험을 찾는 일이고, 그 경험에 바탕 한 신앙 언어와 문화를 풍성히 세우는 일이다. 

  특히 상징 언어는 교리라는 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발굴이 가능하다.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차원을 연결 시키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상징은 복음을 설명하는데 충분한 수단이 된다. 상징은 어떤 사실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상상과 이미지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신의 신앙을 공동체 안은 물론 타자에게 설명할 때 신앙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상징이 가진 역동성에 참여해야 할 이유이다. 

  1992년 여름, 미 뉴욕 호프스트라대학에서 열린 ‘북미기독학자회의’에 참석했다가 예배 중 다양한 색상의 머플러를 두른 여성 참가자들을 보았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귀국 후 색동을 응용해 목사 가운에 어울릴 스톨을 주문 제작하였다. 첫 작가는 장모님이었다. 한 면은 색동으로, 다른 면은 청·홍색으로 양면을 사용하도록 실용성을 살렸다. 그때부터 지금껏 색동스톨은 설날과 추석, 첫돌, 창립기념 등 잔칫날에, 청사초롱스톨은 남북평화통일을 소망하는 행사와 혼인식에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기회를 살려 보급 중이다.

  색동교회에서는 스톨을 더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목회자의 예식용뿐 아니라 새 임원의 위임식에도 어깨에 두르게 하는 것이다. 새해와 평신도주일이면 새로운 봉사자와 예배지기에게  위임(委任) 예식을 하는데, 말 그대로 거룩한 멍에를 맡기는 일이다. 스톨은 소가 메는 멍에와 같다. 당사자들은 소명과 헌신을 고백한 후 스스로 주님의 멍에를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스톨을 두른다.   

  목사: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의 일이요, 거룩한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하시며, 여러분과 멍에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의 어깨를 손수 사용하십니다. 
  예배지기: 주님 제 어깨가 여기 있습니다. (스톨을 어깨에 두른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11)는 말씀대로 온 교회에 본이 되겠습니다.

  스톨을 두른 후 저마다 선택한 소명요절을 낭독한다. 그들이 두른 것은 말씀을 생활 속에서 적용하려는 의미로서의 상징이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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