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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철학의 근본 물음: “논리학”의 주요 “문제”>,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한충수 옮김, 이학사, 2018)
인간이란 질문하고 탐구하는 존재자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묻고, 기원에 대해 질문한다. 그것이 답을 내려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묻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철학은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다.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업, 존재의 참됨(진리)의 문제를 묻는 것이 철학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철학의 근본 물음: “논리학”의 주요 “문제”』에서 존재의 참됨을 근원적으로 묻는 자리, 즉 존재가 빛나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철학의 근본 물음』은 하이데거가 1937-1938년 겨울학기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14주간 행한 강의를 그의 제자 프리드리히-빌헬름 폰 헤르만이 편집한 책(하이데거 전집 45권)이다. 하이데거의 저작이 국내에도 다양하게 번역되었지만, 이 책의 장점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 프라이부르크 강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번역했다는 데 있다. 하이데거 철학의 선이해가 없는 독자라도 일단 이 책을 독서하면, ‘철학의 근본 물음’을 끊임없이 묻고 숙고하는 사유 놀이에 참여하게 된다. 직접 하이데거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 로고스에 대한 앎, 참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원적으로 묻는 것은 다르게 묻는 것을 뜻한다. 하이데거는 지금까지 참이라고 여겼던 것들, 맞음의 근거에 대한 물음이 진지하게 물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참됨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역사적으로 숙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이 같은 주장은 이미 1935년 횔덜린과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옮겼던 『형이상학 입문』(1935년)에서 행한 강의와 맥을 같이한다. 하이데거는 1927년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교수로 취임 이후 형이상학 탐구를 본격화 하는데, 존재 이해를 초기 『존재와 시간』처럼 현존재(Dasein)의 차원을 넘어 역사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도 참됨(진리)에 대한 물음을 역사적으로 숙고한다.
우선, 하이데거는 ‘역사적인 것’과 ‘역사기록적인 것’을 구별한다. 역사기록적인 것은 지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역사기록학적 관찰은 지나간 것을 대상으로 삼는 반면, 역사적인 것은 일어남 자체에 주목한다. 역사적인 것은 과거의 것이나 현재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와 기대 및 염려 속에 들어서 있는 미래를 말한다. 한마디로, 미래로부터 규정됨을 의미한다. 미래는 역사의 근원이자 시원(Anfang, 始原)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미래적인 것은 위대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의 사유로의 전회 이후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시원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라고 하면, 보통 과거에 일어난 일 그리고 그 일들의 지속적인 흐름을 떠올린다.”(고명섭, 197쪽) 이런 이해는 역사기록학적인 관찰에 속한다. 역사기록학적 관찰은 지나간 것에만 도달하고 ‘역사적인 것’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것은 모든 역사기록적인 것을 넘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시간은 ‘미래의 것’으로부터 ‘있었던 것’ 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미래의 것’ 속으로 뻗어나가며 펼쳐진다. 하이데거는 이런 역사 시간 이해를 참됨(진리)에 대한 근본 물음으로 규정한다. 참됨이란 그때그때마다의 본질을 형성하며 모든 참된 것과 참되지 않은 것을 규정하는 힘으로 존재한다. 참됨의 본질은 모든 역사기록학적 사건과 사실보다 더 현실적이며, 영향력 있게 역사적으로 일어남이다. 역사적 일어남은 역사기록학적 사건과 사실들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참됨의 근본물음, 본질을 규정짓는 과정을 ‘사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 규정은 사실들에 의해서는 입증될 수 없다. 개별사례로는 근거 짓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존재의 빛남, 참됨의 나타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참됨(진리) 곧 ‘알레테이아’란 은닉(숨겨져 있음)에서 벗어남, ‘숨겨져 있지 않음’(탈은폐)을 뜻한다.”(고명섭, 215쪽) 참됨도 나타남이고 존재도 나타남이다. 인간이 존재의 본질과 맺는 모든 관계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그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존재의 물음과 숙고를 통해 밝혀진다. 숙고로부터 밝혀지는 본질이란 사실들로부터 주워 모은 것도 아니고, 사실처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본질은 진리 사건처럼 산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규정한다는 것은 본질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 숨겨진 상태로부터 바깥으로 데려와 지는 것이 본질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일종에 사유의 전환을 요청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기부터 존재는 ‘지금 눈앞에 현존해 있음’이라는 시간 규정에 따라 이해되었다.”(고명섭, 238쪽) 하지만 지금에서부터 이해되는 시간은 존재의 깊이를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존재를 이해하려면, ‘지금’이 아니라 ‘도래함’, 미래로부터 이해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 “현재는 궁극적인 미래보다 항상 더 늦는다. 미래와 있었던 것의 전투로부터 현재는 발원한다”고 말한다.(72쪽) 시작으로서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참됨을 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견딤이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최초의 답 속에서 견뎌 내는 것은 그 답에 의해 열린 것이 전개 될 때,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존재는 아무렇게나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된 것으로 존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존재의 역운을 견디는 자, 미래로부터 오는 존재의 열림에서 역사의 시작과 현재의 내적인 질서를 철저히 묻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이데거가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시작의 근거를 묻는 것이다. 근본 물음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끝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물음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그 실패의 자리에서 역사적 숙고인 참됨에 대한 물음을 묻도록 우리를 종용한다. 철학은 시작의 시작이자 시원을 묻는 참됨에 대한 앎이기에 그렇다. 그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 이익을 제공하지 않는 무용한 앎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자의 본질에 대한 지배적인 앎이기에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앎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은 본질로서의 참됨을 묻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 하이데거는 시작을 시작하게 하는 시원에 대한 문제를 끝까지 물고 들어간 이유이다. 시원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존재를 되살리고, 생(Leben)의 참됨이 빛나는 자리이다.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향을 깊게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철학의 근본 물음』을 소개한다.
참고도서: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Ⅱ: 존재의 비밀과 심연』 . 파주: 한길사, 2022.
필자소속: 송화섭 목사(꿈의교회 부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철학박사)
송화섭 꿈의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