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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연회 예수학당,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탐방

기사승인 2024.04.16  21:16:07

곽일석 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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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오늘 4월 16일(화) 오전 9시 30분에 수원성교회(담임 임일우 목사)에서 일찍 모여서 수원성교회에서 지원해준 25승 버스를 타고서 두 시간여를 달려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강화대교 못 미쳐 인근 식당에서 예약된 점심식사를 하고서 곧바로 이동하여 강화대교를 건너서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을 방문하였다.

한 달여 전 강화도 창후교회를 담임하는 민중인 목사에게 해설과 가이드를 부탁하였던 터라 아침 일찍 나와서 우리 일행을 반겨주고 맞아주었다.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기독교 역사 기념관 탐방을 통해 강화도에 전래된 기독교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풍부한 스토리들을 엮어서 짜임새 있고 균형 잡힌 해설로 참여한 모두에게 큰 은혜가 되는 시간이 되었다.

강화도는 지리상의 이점 때문에 복음을 일찍 받아들인 축복의 땅이다. 1893년에 이미 교산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896년에는 홍의교회가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솔내교회라고도 하고 1885년에 문을 연 서울 정동교회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이와 비교해도 강화도의 초창기 교회들은 대단히 빨리 설립되었다 할 수 있다.

현재 강화군에는 200여 개의 개신교회가 설립되었으며 감리교회가 120여 교회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초기 기독교의 전래에 뒤따르는 부흥의 역사는 강화도 최초의 감리교회인 교산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홍의교회의 이야기는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홍의교회의 홍순일 목사와 관련된 일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거듭남을 경험한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됨을 고백하며 각각의 이름의 끝 자를 일자로 통일하고 중간 이름은 성경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제비뽑기 하여 새롭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홍순일의 경우처럼 홍씨 성에 순종할 순 그리고 일자를 통일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강화지역의 초창기 교회의 성경 사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 교인은 지금과는 달리 교육수준도 높지 않았고 성경의 이해를 돕는 책들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성경에 대한 사랑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으로 나타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는 선교초기 강화의 한 교회를 방문하여 실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교인 하나가 맹인을 앞에 세워 놓고 침으로 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는 눈 뜨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교인들 가운데에는 이렇게 자기들도 예수님께서 하신대로 하면 능력이 나타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누군가가 그 같은 짓을 한다면 비웃음과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그들을 어느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말씀을 삶속에서 그대로 실천하려 했던 당시의 신자들에게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의 강화중앙교회의 전신 잠두교회는 1900년에 설립되었는데, 김씨 성을 가진 할머니 교인이 있었다. 할머니는 80이 넘은 나이에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깨쳤다. 할머니는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한 말씀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 말씀이 가슴에 진하게 와 닿은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18:18)

할머니는 재산은 있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복섬이이라는 여종의 시중을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말씀을 읽다가 그게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다음 주일에 교인들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문갑에서 꺼낸 복섬이의 노비 문서를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의아해 하는 교인들을 보고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성경 말씀을 보니 우리 주인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다 같은 형제라.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꼬. 내가 복섬이를 부리는 것은 땅에서 매고 사는 것인데, 이러고도 어찌 하늘에서 푸는 복을 받을 수 있을꼬.”

한국 교회의 초창기에 말씀을 사랑하여 사모함으로 드러났던 일들은 이뿐 아니라 강화도에서만도 그 사례가 많았다. 잠두교회의 김 할머니는 물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말씀을 할머니는 가슴으로 읽어 실천함으로 살아 활기 넘치는 활동을 하도록 불러일으켰다.

우리 일행을 가이드 해준 민중인 목사의 해설에 따르면 강화도 최초의 교인으로 알려진 이승환은 제물포(지금의 인천)에서 주막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를 영접하자 술장사를 하는게 복음에 위배된다는 것을 깨닫고 주막을 그만두었다. 생계수단을 포기하는 결단이었다.

강화도 복음전파의 초석을 놓은 김상임은 초시에 합격한 양반으로 유학자이자 서당의 훈장이었으나 복음을 받아들이자 가신(家神)과 신당(神堂)을 불태워 버렸다.

홍의마을의 양반으로 부자인 홍순일은 마태복음에서 임금에게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100데나리온을 갚지 않았다고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옥에 가두었다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다는 말씀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자기 땅의 소작인들을 모두 불러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단다.

이처럼 이 땅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읽을 때 초점을 해석에 맞춘 게 아니라 실천에 맞추었다.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하기 위해 성경을 읽었다. 머리로 읽은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었고, 육의 양식을 얻는 데에는 방해가 될지라도 영의 양식을 얻기 위해 읽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읽었단다.

이제 우리 일행은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여 전 감신대 총장을 지내신 김진두 목사님께서 운영하시는 카페 봉쥬, 웨슬리하우스를 방문하였다. 매월 1회 정기적인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가운데 오늘은 한국교회 존 웨슬리의 최고 권위자이신 그리고 ‘존 웨슬리의 설교’ 선집의 저자이신 김진두 목사님을 모시고 존 웨슬리의 설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성취함에 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íon)란 주제의 설교문을 탐독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별히 김진두 목사님께서는 ‘존 웨슬리의 설교’ 선집을 출판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시면서 우리가 함께 독서할 내용의 중요한 관심들을 자세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으며, 또 우리 모임의 좌장이신 박인갑 목사님께서는 설교문의 내용 중 중요한 개념들이나 어려운 문맥들을 잘 풀어서 쉽게 설명을 해주셔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다.

조금은 아쉬울 만큼 짧은 시간동안 진행되었지만 경기연회 예수학당 회원들과 함께 했던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기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기는 금번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수원성교회 임일우 목사님과 소명교회 리제훈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예수학당

회장 곽일석 목사, 총무 이신덕 목사

 

   
 
   
 
   
 
   
 
   
 
   
 
   
   
 
   
 
   
 
   
   
 
   
 
   
 
   
 
   
 

 

 

곽일석 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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