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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됨에 따라, 20세기에는 계급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공산주의로 이행하리라 예측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계급 투쟁의 물결에 생각보다 유연하게 대처했고, 노동과 자본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갔다. 그동안 프롤레타리아는 사라지고 독재만 남은 경직된 사회주의 국가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의 모순은 19세기에 정점을 찍은 후에 20세기에 들어 급속히 정리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공산주의의 물결이지만, 그 전부터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19세기를 살면서 자기 시대에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참상을 기록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감시받지 않는 자본이 저지를 수 있는 많은 범죄가 기록되어있다. 그가 고발한 범죄들은 자본에 대한 감시가 허술한 모든 곳에서 여전히 재현된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잃노라면 시대의 고발자로서 지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포장지를 찢어 꼭꼭 감추어둔 본질을 밝혀낼 만큼 날카롭고 명민하한 용기. 그리고 따뜻한 마음. 19세기 자본주의는 가난도, 범죄도, 성공도 개인의 문제에 국한 시키려 했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는 그들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하는 많은 문제들에 사실은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고발한다. 바로 이야기를 통해서.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이라는 작품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깊이있게 고민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핍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결혼한 누나 밑에서 양자로 자란다. 대장장이인 매형 조는 핍에게 한없이 자애로웠지만, 누나는 무섭기가 그지 없었다. 핍은 누나에게 호되게 혼나는 날이면 엄마가 묻혀있는 묘지에 찾아가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 묘지에 다녀오는 길에 죄수선에서 도망친 탈옥수와 마주친다. 더러운 몰골에 쇠고랑을 차고 독기로 가득찬 탈옥수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탈옥수는 핍에게 다짜고짜 음식을 가져오라고 윽박지른다. 공포에 질린 핍은 누나의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셔 탈옥수에게 가져다 준다. 그 일은 소년에게 악몽과 같았다.
핍은 대저택에 사는 귀부인 미스 해비셤에게 말동무로 고용된다. 그러던 어느날 귀부인의 양녀 에스텔러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부유한 귀족과 가난한 대장간 아들의 사랑이라니. 핍은 멋진 신사가 되어 에스텔러의 짝이 되는 꿈을 꾸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변호사가 소년을 찾아온다. 정체를 밝히길 거부한 어느 후원자가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런던에 가서 신사 교육을 받으라고 한다.
핍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출처도 모르는 유산을 덥썩 받아들이고, 런던행을 선택한다. 새로운 인생에 들떠있는 핍에게 매형-아빠는 조용히 이야기한다. 언제나 널 사랑한다고,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그러나 핍은 속으로 다짐한다. 다시는 가난에 찌든 대장간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가난한 촌뜨기에게 런던 생활은 신세계였다. 정신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핍은 신사사가 지녀야할 지식과 품위보다, 신사 계급의 허세와 사치를 먼저 배웠다.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몽상에 빠져들었다. ‘귀부인 미스 해비셤이 에스텔러와 맺어주기 위해 비밀 후원자가 되었을 거야.’
그러던 어느날 후원자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닌 공동묘지에서 만났던 탈옥수 매그위치였다. 매그위치는 핍과 헤어진 후 얼마 안 돼 붙잡혀 상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아메리카 종신유형을 선택하면 사형을 면해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죄수들을 보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로 보내진 매그위치는 넓은 황무지를 개간해 대농장을 일구는데 성공했다. 큰 돈도 벌었지만 그에게는 재산을 상속할 가족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자기 인생에 몇번 없었던 친절을 보여준 핍을 떠올리고 상속자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꼬마 핍은 매그위치를 쇠고랑을 찬 괴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받을 유산이 그의 것이니. 때마침 매그위치는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탈출해 런던으로 잠입한다. 매그위치가 위험을 무릎쓴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발각되면 사형이 집행될 처지였지만,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꼬마가 멋진 신사로 자라는 모습을 꼭 한 번 눈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핍은 저간의 사정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처음에는 탈옥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헌신적이고 애정어린 매그위치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매형과 누나의 사랑을 져버린 배은망덕한 자신과 빵 한 조각의 은혜를 뼛속 깊이 새긴 매그위치 중 누가 더 훌륭한 인간인가.
결국 매그위치는 사법당국의 추적을 피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사형을 받는다. 핍은 그의 마지막을 지키며 인간적인 의리를 다한다. 그리고 빈털털이가 되어 매형 조의 대장간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보살피고 응원했던 사람들의 사랑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찰스 디킨스는 19세기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던 가난, 범죄, 성공 같은 것들이 사실은 사랑의 부재와 관련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가난, 매그위치의 범죄는 사랑의 부재에 기인하며, 스크루지 영감의 성공 또한 사랑의 부재를 통한 성취이다. 많은 사회적 문제가 사랑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생각은 사랑이 사회적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사랑의 사회화로 이어진다.
19세기 찰스 디킨스의 생각이 우리에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쉽게 소홀히 하고 실패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화하고자 했던 찰스 디킨스의 고민만큼 우리는 진지한가. 사실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향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사회적인 것이다.
- 만남교회 우동혁 목사
우동혁 만남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