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7일 월요일, 저는 생애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국립 5.18민주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막상 버스에 몸을 실으니 그리 먼 길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늦게 이곳에 왔습니다.
전날 담임 목사님의 부재로 오랜만에 주일 설교를 세 번 했더니 몸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제게 안수를 해 주신 분의 초대는 언제나 저의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합니다. 결과는 항상 제 기대를 넘습니다. 늘 만남이 있고, 늘 배움이 있으며, 늘 기쁨이 있습니다.
그 날 그렇게 저는 고 김영수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사실 주일 설교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광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야 작년 40주기 행사를 위해 만든 영상을 처음 보며 목사님과의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영상 후반에는 김민기의 노래 ‘상록수’가 실려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부른 것만큼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녹음은 1981년 김영수 목사님과 아내 남영숙 목사님의 결혼식 피로연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1절은 새색시가, 2절은 새신랑이, 3절은 하객과 신랑 신부 모두가, 그리고 4절은 신랑 신부의 2중창으로....혼인 잔치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환한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질 만큼 감동적인 노래였습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그로부터 3년 뒤, 김영수 목사님은 젊은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겨두고 수감생활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로 급성 백혈병을 얻어 1984년 3월 17일에 소천하셨습니다.
상록수의 작곡가 김민기는 원래 이 노래를 노동자들의 합동 결혼식을 위해서 작곡했다고 합니다. 노 대통령도 감리교 신학대학생 시절 산업선교회를 통해 동대문 피복노조와 미성년자 노동자들의 교육에 앞장섰던 그의 결혼식 노래에 선뜻 제 마음속의 상록수 1위 자리를 양보해 주실 듯합니다.
3월 중순의 남도였지만 김영수 목사님의 안장식이 열리던 그 날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추위가 꽤 매서웠습니다. 다음날 전남 보성에서는 폭설에 42중 추돌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었지요. 간단한 국립묘지 안장 예식 후에 ‘고난함께’에서 준비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장식에서는 국립묘지 직원이 정장에 장갑을 끼고 목사님의 영정을 뒤에서 붙들었지만, 예배 중에는 그 일을 맡아줄 다른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당일 청바지에 얇은 패딩을 입었던 저는 하객들 뒤편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길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처럼 말입니다.
사실 제 이름이 불리기 전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길했던 소리는 운명의 노크 소리였습니다. ‘고난함께’의 전남병 사무총장님이 저의 이름을 불렀고 저는 민망한 복장과 행색을 감추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나갔습니다. 김영수 목사님의 영정 뒤에 서서 최대한의 예를 표하며 안아 드렸습니다. 무언가 뜨거운 연결을 느꼈습니다. 순간 제 마음속에서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목사님의 희생을 위해서라도 절대 움직이지 않으리라! 절대 힘들어하지 않으리라!’
25년 전 군악대에서도 이런 행사를 많이 했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십대 청춘이 아니었습니다. 그사이 불어난 제 몸무게도 고려해야 했었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설교가 시작하자마자 찾아왔습니다. 이정배 교수님은 김영수 목사님을 생각할 때 현재 시국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많으시다며 설교가 길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말씀하시면서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 새겨들을 수밖에 없었던 말씀에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다 끝났다 싶을 때 찾아오는 법이지요. 예배 막바지에는 예정에 없던 순서가 생겼는데 이번 민주묘지 안장 과정에 큰 도움을 주셨던 전남지역 한 원로 목사님의 ‘한 말씀’을 듣는 순서였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결국 사회자가 서너 번 싸인을 보내어 ‘긴 말씀’이 끝났고 제 평생에 들었던 축도 중에서 가장 은혜로운 축도를 듣는 것으로 한 시간이 훌쩍 넘었던 저의 임무도 끝났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손가락이 얼고 마비되는 것 같았지만 예배 후에 김영수 목사님의 따님으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든 아픔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참으로 제게 큰 영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몸은 잠시 힘들었지만, 목사님과 가족들의 아픔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소 속에서 김영수 목사님을 만나 구레네 시몬이 되었던 이야기를 평생 기억할 수 있으니 감사했습니다.
그 날 저는 광주에 남았습니다. 서울팀을 보내고 홀로 남은 저에게 김목사님 따님이 주머니에 차비를 넣어 주시고는 수줍게 저 멀리 사라집니다. 김영수 목사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여 꼬깃꼬깃 손에 꼭 쥐고 그날 저녁 말바우시장에서 따스한 팥죽을 사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금남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을 찾아갔습니다.
2025년 봄, 구경꾼에서 어느새 순례자가 되어 금남로를 걷고 있는 망월동의 구레네 시몬의 품에는 여전히 김영수 목사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
||
조진호 jino-j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