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박보검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최고시청률 14.7%까지 치솟으며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다 담아낸 이 드라마 속엔 넘어지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서며, 세월을 뛰어넘어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두 말 할 것 없고, 조연 배우들의 열연도 놀라울 정도로 빛이 난다. 나르시시스트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두 명의 조연이 눈길이 갔다. 그들에게서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도동리에서 오징어 배 선장을 하는 지역유지 부상길(최대훈)이고, 또 한 사람은 양관식과 애순의 딸 금명의 시어머니가 될 뻔한 윤부용(강명주 역)이다. 부상길은 꼰대스타일의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이고 윤부용은 품위 있어 보이는 외모지만 저급한 내면을 가진 여자 나르시시스트이다.
1. 부상길
부상길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가장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들이 권위의식을 갖는 이유는 자신은 우월한 존재이고 자신이 아닌 이들은 모두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상길은 평소 자기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늘 아내에게 남편인 자신 덕에 쌀밥 먹고 사는 것이라고 생색을 내고 무시하면서 가스라이팅을 한다. 지배욕구가 강한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는 수단이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도동리 계장선거에서 자신을 뽑아달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 때 마을 사람들이 다 보는데도 불구하고 한쪽 구석에서 땀을 흘리면서 국수를 삶는 자신의 아내에게 “내 국수 오냐? 저건 아주 국수 하나를 빠딱빠딱 못 말고, 씨, 너 집에 걸어가, 내 차 타지마! 알아들어?”하며 마치 하인 부리듯 소리 지른다.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을 경멸하고 깎아내리며 군림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그런 행동이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계장선거 경쟁상대인 오애순의 가족에 대해서 “그 집구석은 피 자체가 발랑 까졌고 우리 딸들은 이름부터가 현숙이, 정숙이 아니겠어? 나는 정숙한 거 좋아해”하고 떠벌리며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뒤에서는 복덕방하는 미숙이 발가락을 주물럭거리며 부적절한 추파를 던지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망신을 당하고 결국 계장자리를 오애순에게 넘겨준다. 바람피우는 나쁜 짓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 착한 척 하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아내 뿐 아니라 양관식에 대해서도 함부로 대한다. 자기 배에서 일하는 젊은 양관식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하자 부상길은 관식에게 갑질을 하며 가지 못하게 명령을 한다. 관식이 말을 안 듣자, 결국 발길질을 하며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가 아랫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그 앞에 군림함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인간에 대해 승자와 패자로 계급을 나누고 패자, 즉 자신보다 약자로 여겨지는 이들에게 무례하게 갑질을 행사하는 모습과 극단적인 서열의식, 인간을 그저 도구로만 대하는 태도 또한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다.
시간이 흘러 부상길은 선주가 된 양관식의 성인이 된 딸 앞에서도 양관식을 향해 “너”라고 무례하게 말하며 잔소리를 한다. “남의 아빠한테 너가 뭐야!”라고 기분나빠하는 딸 금명에게 부상길은 “얘가 인마, 지금이야 선장이지, 어? (옛날엔) 내 밑에서 그물 잡고 어? 라면 삶고, 어?”하며 하대한다.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해 전혀 공감의 능력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다. 부상길은 궁색해질 때마다 '학! 씨'라고 소리친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식으로 툭하면 화를 내면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한다.
거만하고 권위주의적인 나르시시스트인 부상길은 젊었을 적에는 가족들을 막 대하였고 노년으로 접어 들어가는 시점에서도 그런 모습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강화된다. 그의 아내는 결혼 초기부터 그와의 결혼을 “똥밟았다”며 후회하였다. 노년이 된 부상길에게 성인이 된 자녀들은 당당하게 대들고 맞서며 그를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이렇듯 나르시시스트는 노년에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외롭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2. 윤부용
윤부용은 양금명(아이유)의 애인인 영범의 어머니이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그녀는 가난하지만 엄마인 애순을 닮아 똑똑해서 서울대에 입학했고 일본에 유학도 다녀온 양금명이 자신의 눈에 차지 않기에 늘 못마땅하게 여긴다. 금명을 만나 식사를 하는 윤부용은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지? 우리 영범이 만난다니까?” 하고 묻는다. 좋아하신다고 대답하는 금명이 앞에서 “좋아하시겠지, 좋아하실 테지”하며 세한 분위기를 만든다. “가난하고 급도 안 되는 너희 집안 부모가 부잣집 아들과 만난다니 “좋아하는 게 당연하겠지”라는 식의 무시하는 태도다. 취업을 해서 직장을 다닐 생각인 금명에게 윤부용은 “계속 다니게? 결혼하고도 계속 (직장을) 다니려고?” 하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영범이 장남이고 우리 영범이 능력 있는데, 우리 영범이 처가 왜? 왜 영범이 뒷바라지 안하고 밖으로 나돌아야 될까? 네가 생각해도 내가 좀 짜증나겠지?” 자신의 생각과 짜증나는 감정은 당연하지만 상대의 마음은 헤아릴 의도가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공감능력부족이 드러난다.
자신이 구입한 아들 영범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온 금명에게 윤부용은 “너 집에도 드나드니?”하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미역국을 그릇에 퍼 담는 금명에게 “국도 못 푸네, 국도, 집에서 안 배웠니?”라며 신경질을 낸다. “집밥이 오랜만이라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남자친구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금명에게 “우리 집은 소식한다”며 말을 자르고 “이 집은 아들집이 아니고 자신이 해 준 집이니 금명이가 안 드나들었으면 좋겠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아들이 금명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니 “학교 앞에 집구해달라고 하더니 어떻게 겨우……. 겨우…….(수준 이하의 여자와 연애질이냐?) 너는 내 프라이드야! 엄마는 너무 자존심 상해!”(저딴 년과 연애를 하다니)하며 금명을 무시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들의 기분뿐만 아니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기분과 감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식의 인생이 곧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늘 부모가 원하는 인생을 자식이 살아가기를 강요하고 모든 것을 간섭하고 통제하려 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고 한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식을 바꾸어 놓으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은 공부, 전공, 취미, 직업 등 어느 것 하나 자기 생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게 되었을 때도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조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결국 금명과 영범이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상견례를 하게 되었는데, 금명의 부모들은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속시간에 미리 와서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살면서도 한 시간이나 지각한 윤부용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없다. 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뉘우치는 일이 없다. 이들에게 사과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윤부용은 금명이 계속 마음에 안 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애순과 관식이 보는 앞에서도 금명을 무시하며 비꼰다.
양가 어머니들이 한복을 맞추기 위해 한복집에 갔을 때도 애순은 분홍색 한복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윤부용은 사돈이 될 애순의 의사를 무시하고 팥죽색으로 하라고 명령한다. 한복가게 주인이 분홍색이 백번 낫다고 했지만 “아줌마가 결혼해요?”하며 면박을 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것은 에메랄드 색으로 해 달라고 한다. 엄마는 분홍을 좋아하신다는 금명의 말에 “분홍은 촌스럽다며, 네 집 손님만 오는 거 아니잖니? 같이 맞추길 천만다행이다”라고 하며 모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 마냥 강요한다. 아마도 결혼식에서 사돈인 애순이 자신보다 예쁘고 젊게 보일 것이 싫고, 자신이 돋보여야 되기 때문에 애순에게 별로 안 예쁜 팥죽색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말이 다 맞다’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항상 옳다고 여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늘 완벽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들 영범이 분가시켜달라고 요구하자 ”네가 시켰지? 왜? 분가하자고 꼬시면 영범이한테서 집 한 채 나올 거 같아서? 네가 얼마나 볶아쳤으면 재가 나한테 이래? 너 아주 영범이를 잡는구나, 잡아“ 하며 폭발하면서 금명을 몰아붙인다. 자신은 분가해달라고 말한 적 없다는 금명에게 윤부용은 ”영악하고 뻔뻔스럽다“며 경멸하며 ”누굴 닮아 그래?“하며 선을 넘는다. ”얘 너 청첩 돌리면 끝인 거 같지? 내가 엎자고 만 들면, 어? 어!“하는 협박에 금명이 결혼 안하고 못하겠다고 하자 ”너 지금 파혼을 하겠다는 소리야? 네가? 네가?(감히?)“하며 불쾌해한다.
그러면서 아들 영범을 향해 ”네 인생의 8할이 내 지분이야, 너는 내 프라이드고! 내 인생이라“고 소리친다. 과장된 자기애로 가득 찬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을 포함한 타인을 자신의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낸 줄 수 있는 액세서리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자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자녀가 원하는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자식을 통해서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점에 집착한다. 자신의 꿈, 욕망, 및 목표 달성을 위해 자녀를 이용하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은 이런 자기 행동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자녀의 삶을 마음대로 지시하고 통제한다.
결국 금명은 파혼을 결심했고, 이후 윤부용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며느리로 삼았지만 이후 노년이 된 그녀는 아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고, 자신에게 그다지 대접해 주시는 않는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아들의 원망을 듣는다.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노인이 된 그녀는 아들을 향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이 꼴을 보자고 그 노력을 했는가? 라고 한탄한다. “왜 엄마만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자신은 안 불쌍하냐?”며 원망하는 아들에게 “네가 뭐가 힘들어? 네가 예민한 거지. 네가! 나는 다 너 위해 그랬어! 너 위해 살았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어떻게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해? 너는 내 인생이야! 내 인생!”하고 외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말로는 아들을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아들이 원하는 것을 절대 선택하지 못하게 조종하고 통제한다. 이들은 자녀가 받는 상처 따위엔 관심이 없다. 자녀가 힘든 감정을 털어놓으면 본인이 더 힘들었다고 화제를 전환하며 자녀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무시하고 억압시킨다. 결국 윤부용은 부상길과 마찬가지로 외롭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면서 인과응보를 치르게 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원은수 원장은 나르시시스트의 대표적 특징으로 ①근거 없는 우월감 ②공감능력 부족 ③타인을 수단화 ④통제 성향 ⑤죄책감 결여 ⑥선 넘는 행동 ⑦분노나 우울감 조절 부족 ⑧보복성 등을 꼽는다. 부상길과 윤부용은 위의 특징들이 대체적으로 나타난다.
‘폭싹 속았수다’의 역대극 나르시시스트 빌런 부상길과 윤부용의 물오른 연기는 정말 볼만하다. 윤부용을 연기한 배우 강명주씨는 이 드라마가 개봉되기 직전인 2025년 2월 27일, 향년 53세의 일기로 지병인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이 고인의 마지막 유작으로 알려져 먹먹함을 더했다. 훌륭한 배우 한 명을 잃은 것이 너무도 아쉬울 따름이다.
임석한목사 (성복교회)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