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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나에게 건넨 말>, 한상희 지음, 다봄, 2023)
한 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 “과거가 현재를 구원할 수 있을까?”를 물었다. 죽은 자와 산 자, 과거와 현재의 보이지 않는 질긴 끈을 작가는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하려면, 과거가 현재를 구원하려면, 다시 말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하는 힘을 지니고, 과거가 현재를 구원하는 힘을 지니려면 죽은 자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고, 과거의 역사를 생생한 현실로 되살려 읽을 필요가 있다. 죽은 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이유로 어떻게 죽어야 했는지를 세밀히 살피고 그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낼 때 비로소 죽은 자가 산 자를, 과거가 현재를 구원할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 역사 공부가 왜곡되거나 부실할 때는 물론 정반대로 죽은 자가 산 자를, 과거가 현재를 참혹하고 허망하게 죽일 수도 있다.)
2022년 1월 11일 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에서는 <제주4·3사건>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주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또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536 쪽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영락교회 한경직의 서북청년단의 악랄한 양민 학살행위가 있었다. 이는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이며, 여순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저자 한상희 박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사회·지리·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을 위해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중등교육 전문가로서 회복적 학교문화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에서 ‘제주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라는 주제 발표를 함으로써 제주4·3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제주4·3 강의와 유적지 답사 안내를 맡아 평화·인권·통일·정의의 가치에 관해 소통하고 있다. 현기영 작가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는 토크콘서트를 지속하면서 우리가 제주4·3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2023년 4월 1일, 현기영 작가, 강우일 주교, 김종민 4·3위원회 위원과 함께 ‘왜 우리는 4·3을 말하는가’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4·3을 바라보면서,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피해·관계·책임·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제주 토박이 한상희 박사는 이 책을 통해, 4·3을 알고, 기억하고, 함께 나누려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4·3의 진실이 무엇이고, 당시 국가폭력의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또한 4·3의 광풍에서도 누가 어떻게 시민성을 실천했는지 역사의 교훈을 되짚으며 4·3이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숙고한다. 현기영 작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전하려는 역사적 진실은 날카롭지만 그 진실을 전하는 방식은 무척 친근하고 다정해서 꼭 늦은 밤 친구들과 구운 감자를 놓고 옹가종기 모여 있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우연히 알게 된 청소년기에서부터 시작하여 35년 동안 저자가 품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4·3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4·3이 대체 왜 일어났는지, 당시 제주의, 한국의, 한국 밖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무엇이 누구를 희생시켰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4·3의 발생에서부터 그 참혹한 과정을 섬세하게 더듬어 나간다. 또한, 저자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그 참혹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왔으며 제주는 어떻게 복원되었는지를 살펴 나간다. 종족 말살의 그 참사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 살아남았어도 죽은 것만 못한 삶을 고통스럽게 이어나가야 했던 산 사람들의 이야기로 ‘형제 책임주의’라는 가르침, 그 가르침을 토대로 4·3의 폐허를 딛고 거친 세파에 맞서 똘똘 뭉쳐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 나간다. 아울러, 당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악에 대응했던 정의로운 시민들의 용단을 ‘선의 시민성’으로 규정하고, 그 덕에 수많은 목숨이 살아날 수 있었고 그렇게 살아난 귀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깨달음을 각인시킨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4·3에서 주목해야 할 ‘악의 평범성’과 ‘선의 시민성’에 대한 소중한 통찰을 얻어낸다.
‘4·3은 무엇일까’라는 저자의 오래 숙성된 물음은 ‘4·3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저자 자신이 4·3과 함께하겠다는 ‘소명’으로 빛을 발한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기, 무덤 속에 묻힌 역사를 햇살 속으로 끄집어내 세상과 소통하도록 돕기, 대척과 반목이 아니라 소통과 화해로 나아가도록 회복적 정의를 살려 내기, 이것들을 혼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또 세계가 다같이 하도록 발로 뛰기… 작가의 이런 눈물과 땀과 수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4·3은 국가폭력에 의해 무려 3만 명의 생명이 학살된 민족의 참사이다. 그러기에 4·3을 기억하는 것은 민족공동체의 의무이다. 그럼에도 이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는 행위는 오늘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우리 조국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함부로 외면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다. 평화, 인권, 정의, 비폭력 등이다. 이처럼 귀한 가치를 품고 있는 것이 바로 4·3이다. 그러므로 4·3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죽은 자가 산 자를, 과거가 현재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인종청소 공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돌판에 기록된 문구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함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부끄럽고 악한 이름들이 있다. 그것은 ‘영락교회’, ‘한경직’, ‘서북청년단’이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내란)로 우리 대한민국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 호도하며 내란 수괴의 “석방”과 “탄핵 각하”를 외치며 비민주적 퇴행에 앞장서는 극우 무리의 핵심 세력이 바로 오늘의 한국 교회다. 제주4·3에서 무고한 양민을 무참히 학살했던 영락교회 한경직과 서북청년단의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오늘날 한국 극우의 모습에 어른거린다. 장신대 은퇴교수인 소기천이 “이재명 암살이 성공하길 빈다”는 극언을 토해내고 있는데, 소기천이 어려서부터 영락교회 울타리에서 내내 성장했고 지금도 영락교회 교인이라는 사실이 정말 소름끼친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서북청년단이 현재를, 죽은 한경직이 산 소기천을(소기천이 가르친 젊은 신학도들을) 다시 죽이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역사공부는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역사공부를 바로하면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원할 수 있지만, 그 역사공부가 왜곡되거나 부실하면 한경직의 서북청년단을 빼닮은 소기천같은 자가 언제라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4·3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대한민국 시민들, 특히 제주도민 앞에 몹시 참혹한 죄를 지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꼭 챙겨 읽어야 할 책이 바로 한상희 박사의 이 책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지도자 위치에 있는 목사, 장로들이 먼저 이 책을 읽어보기 바라며 강력히 추천한다.
이광우 목사(전주열린문교회)
이광우 전주열린문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