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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커피 애호가입니다. 그래서인지 간혹 교인들이 해외에 다녀올 때면 커피 원두를 선물로 가져오기도 합니다. 교인 가정에 심방할 때마다 후식으로는 당연히 커피가 나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정성껏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고, 어떤 가정에서는 믹스 커피를 대접합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 김 목사는 어떤 커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이 집사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아주 비싸고 좋은 커피를 선물로 받았는데요... 목사님 오시면 내려 드리겠습니다.”
김 목사는 여러 가지 바쁜 일정을 마친 후 이 집사 댁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이 집사가 자랑스럽게 가져온 커피는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였습니다. 세계 3대 커피로 알려져 있고, 정말 비싸고 귀한 커피였기에 기대감이 컸습니다.
드디어 예배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향도 없고 쩌든 듯한 냄새가 진하게 나서 도무지 맛이 없었습니다. 한껏 기대하고 있던 터라 김 목사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습니다.
그러자 이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회사가 거래하는 바이어가 좋은 커피라고 선물한 것인데 맛이 어떠세요?”
김 목사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집사님, 좋습니다. 맛있습니다.”
이후 김 목사는 이 집사에게 커피 포장지를 좀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확인해 보는 순간,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커피는 분명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팬시였지만, 유통기한이 5년을 훌쩍 넘긴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커피라도 너무 오래되면 최악의 커피가 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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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오래되면 오히려 가치가 더해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골동품도 그렇고 문화재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이나 음료는 오래되면 사용할 수 없고, 자칫 해롭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커피가 오래될수록 맛이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화 반응
원두가 공기 중 산소와 접촉하면서 산화 반응을 겪습니다. 이 과정에서 커피의 주요 향미 성분(휘발성 화합물)이 산화되어 풍미가 감소하고, 쓴맛이나 떫은 맛이 늘어납니다. 특히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된 오일 성분이 산화되면 산패 현상이 일어나 맛이 크게 떨어집니다.
향의 휘발
커피 특유의 풍부한 향은 다양한 휘발성 화합물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이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서서히 날아가면서 향이 약해지고, 맛의 깊이와 복합성도 감소합니다.
습도·온도에 민감
원두는 주위 환경의 습도와 온도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습도가 높으면 원두가 수분을 흡수해 내부 성분 변화가 가속되고, 온도가 높으면 산화 및 휘발 반응이 빨라져 맛이 더욱 쉽게 변합니다.
지속되는 화학 반응
로스팅된 원두 내부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학 성분이 계속 변형됩니다. 로스팅 중 생성된 휘발성 물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소실되어, 맛과 향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보관 상태의 중요성
직사광선을 피하고 밀폐된 용기에 보관하며, 서늘하고 건조한 장소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분쇄된 커피는 산소와 접촉 면적이 넓어져 더 빠르게 산패하므로, 사용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듯 커피 원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화학적 변화를 겪고, 그 결과 맛과 향이 변질됩니다. 따라서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관 방법을 지키고, 로스팅 후 일정 기간 내에 소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교회에도 오래된 것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애지중지 보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유통기한이 지나, 한때는 좋았어도 이제는 가치가 떨어져 버린 것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복음의 가치와 중요한 교회의 전통은 반드시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을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포장하고 보존하려 드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삼십여 년 전에 목회했던 시골 교회에는 아주 오래된, 고장난 앰프와 스피커가 있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그 앰프를 켜고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봉헌물이라 함부로 치우지도 못하고, 새로 구입하지도 못했던 씁쓸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커피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오래되면 맛이 변하고, 전혀 쓸모가 없어집니다. 좋은 커피일수록 맛이 변하기 전에 빠르게 내려서 마셔야 합니다. 보관만 한다고 맛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 날이 옵니다.
최우성
(태은교회 담임목사, 강원대학교 커피학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Ph.D, D.Min)
최우성 ws_4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