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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비폭력 저항>, 월터 윙크, 김준우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세모(歲暮)의 길목에서 마음이 뒤숭숭하다. 20여 년 전 읽었던 책을 끄집어 내어 다시 읽게 되는 이유다. 이 책을 번역한 김준우는 그때 이렇게 말한다. “21세기는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문명 전환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중심주의, 개인중심주의, 소유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생명중심주의, 우주중심주의, 존재중심주의로 패라다임을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21세기는 짐승화(animalization)의 세계가 되고, 인류문명은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11) 세상이 온통 폭력 천지다.(17) 이 폭력적인 정황에 예수님의 비폭력 저항을 소급한다.
비폭력 저항은 수동성이 아니다. ‘비폭력’은 권력 앞에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함도 억압당하는 자들이 마음속으로부터 고분고분해야 하며, 체제를 바꿀 생각 없이 모든 불의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평화주의(pacifism)와 수동성(passivism)의 영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왜곡하고 혼돈케 한다.(24)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비폭력 저항(nonviolent resistance)은 단순히 온순함이 아니다. “악한 자에 맞서서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이다.(29) 악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셋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수동적 태도요, 둘째는 폭력적 대항이며, 셋째는 전투적인 비폭력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제3의 길이다.(30)
제3의 길은 오른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며,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비폭력 행동은 비록 즉각적으로 압제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하더라도, 비폭력적 행동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친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증거 했듯이, 비폭력 행동은 그들에게 새로운 자기 존경심을 갖게 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킨다.(43) 제3의 길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몸속에 내재된 두 가지 선택, 즉 도피냐 싸움이냐 대신에 맞이하는 새로운 길이다. 여기서 예수님을 통해서 악을 악으로 맞서서 대항하지 않는 길이 열린 것이다.(44)
제3의 길인 창조적 비폭력 저항은 예수님의 건설적 대안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Reign of God)다. 옛 질서 속에서 그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살아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수님은 새로운 대항 공동체(Counter-Community)를 세운다. 이 공동체가 발전시킨 보편주의적인 경향은 예수님 자신의 유대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와 마침내 로마제국을 넘어섰다.(60) 예수님은 비폭력을 단순히 원수를 이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원수조차도 정의로운 사람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은 수단이다.(61) 제3의 길은 폭력을 회피하기 위한 완전주의자의 길이 아니라, 분쟁하는 쌍방 모두의 인간성 회복의 길이다.
예수님의 제3의 길은 원수에 대한 사랑이 그 핵심에 놓여 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참다운 기독교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그 원수 역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72) 공포정치를 일삼았던 독재자들(스탈린, 모택동, 호메이니, 피노체트)과 대비된, 비폭력 혁명인 제3의 길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83) 이 길은 자신의 영혼 속의 폭력(에고)을 뿌리 뽑는 것을 요구한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는 죽음만이 아니라, 내가 내 행동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초연) 신실하게 행동할 만큼 자유롭다는 뜻이다.(98) 이 자유는 영적 수련을 요구한다.
한천교회 전승영목사
전승영 한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