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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리는 종종 그 깊고 풍부한 향미에 감탄하지만, 정작 커피나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놀라운 생존 전략을 갖고있는지는 쉽게 잊곤 합니다. 사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탐구심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조화의 결과입니다.
1819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룽게(Friedrich Ferdinand Runge)'는 커피콩 속에서 신비로운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시인이자 과학 애호가였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가 룽게에게 커피의 성분을 연구해 보라고 제안했고, 그는 실험 끝에 '카페인(caffeine)'이라는 물질을 분리해냈습니다. 룽게는 이 물질이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졸음을 방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후 수많은 연구를 통해 카페인의 작용 원리가 점차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카페인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에게 각성을 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커피나무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페인을 만들어냅니다. 열대 기후의 습하고 따뜻한 환경에서는 다양한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는데, 커피나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카페인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특히,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Robusta) 커피 품종은 다른 품종보다 카페인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로부스타라는 이름 역시 강인함(strong)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반면, 부드럽고 풍미가 깊은 아라비카(Arabica) 커피는 상대적으로 카페인 함량이 적어 해충과 질병에 더 취약하지만, 고산지대에서 세심한 관리 아래에서 더욱 섬세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커피 산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연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17세기 후반, 동인도회사는 커피를 새로운 경제 작물로 삼아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영국 식민 정부는 아라비카 커피를 실론의 고지대에 심었고, 성공적인 수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1869년, 모든 기대를 무너뜨린 치명적인 위기가 닥쳤습니다.
커피나무를 초토화시킨 무서운 질병, '커피녹병(coffee leaf rust)'이 실론을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이 곰팡이 병은 커피 잎의 광합성을 방해하며 나무의 성장을 저해해, 결국 농장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1880년대까지 실론의 커피 농장은 대부분 사라졌고, 영국은 커피 대신 차(Tea) 재배로 눈을 돌려 오늘날의 실론티(스리랑카 홍차)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렸고, 오늘날까지도 병충해와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해충 중 하나가 바로 '커피 보러(Coffee Borer Beetle)'입니다. 학명 Hypothenemus hampei로 알려진 이 작은 딱정벌레는 커피 열매 속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아 번식하며, 커피의 품질과 생산량을 크게 감소시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커피 보러’가 싫어하는 나무는 카페인을 많이 함유한 로부스타 커피입니다.
커피나무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다 보면, 작은 식물에게까지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커피는 단순히 인간에게 각성 효과를 주는 음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도 커피나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때로는 부드럽고 섬세한 아라비카처럼, 때로는 강인하고 거친 로부스타처럼, 삶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며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이 작은 열매가 자연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생존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어보면 어떨까요?
커피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과 자연의 놀라운 질서를 담고 있는 작은 우주와 같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 속에는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도전이 담겨 있으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최우성(태은교회 담임목사. 강원대학교 커피과학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Ph.D, D. Min)
최우성 ws_4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