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검은 수녀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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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화의 장르가 오컬트라면, 그중에서도 그리스도교적 구마(驅魔)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라면 거의 빼놓지 않고 보려고 하는 편이다. 이런 종류의 오컬트영화들은 이성으로 파악하거나 도달할 수 없는 강력한 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을 희생양 삼아 파괴하는 절망의 양상들을 그린다. 그런 영화들에 관심을 갖고 챙겨보는 나에게 언젠가 아내는 당신은 목사면서 무슨 귀신 나오는 영화를 그렇게 즐겨 보냐고 놀리듯이 말한 적이 있다. 종교적인 소재니까, 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구마를 소재로 한 어떤 영화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해 괴로워하던 사제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어쩌면 내 관심의 이유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만일 악마가 실제로 있다면, 그 반대편에 신도 반드시 존재할 테니까.”
오컬트영화 중에서도 그리스도교적 배경을 지닌 영화들은 신 존재에 대한 신앙적 회의, 무자비하고 강력한 악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과연 신의 선함을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 영혼의 나약함 속에서도 악과 대결하려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희생을 통한 구원의 서사 등을 반드시 보여주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오컬트영화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1973년 작 《엑소시스트》는 이런 종류의 고민들을 깊이 있는 성찰과 함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검은 사제들》(2015)의 뒤를 잇는다는 《검은 수녀들》이 나왔을 때, 영화 전문가들로부터도 일반 관객들로부터도 평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 수녀들의 캐릭터는 새롭고 인상적이다. ‘서품도 안 받은 주제에 수녀가 무슨 구마를’이라는 성차별적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권위자들의 면전에 상스러운 소리를 날려대는 삐딱한 구마 수녀의 목적은 오직 사람을 살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린다’는 이 단순하디 단순한 목적이야말로 종교에 있어 얼마나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것이란 말인가. 영혼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유니아 수녀는 권위와 금기를 무시하고 깨뜨리면서, 자신과 비슷한 신기를 가진 미카엘라 수녀를 찾아내 그녀와 함께 구마를 시도한다. 가톨릭의 구마에 한국의 무속을 접목시켰던 《검은 사제들》과 비슷하게 《검은 수녀들》에서도 무속의 활용을 시도하며 거기에 타로까지 더한다. 유니아 수녀는 구마를 위해서라면 같은 수녀였다가 지금은 파계하고 무당이 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굿을 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연대로 마지막 구마가 진행된다는 점 또한 비교적 새롭다.
《검은 사제들》의 후속작을 표방한 만큼 영화 곳곳에는 《검은 사제들》의 흔적을 심어 놓는다. 유니아 수녀는 《검은 사제들》에서 김윤식이 맡았던 김범신 신부의 제자로 등장하고,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김범신 신부의 보좌였던 최준호 신부, 즉 강동원이 짧게 등장하기도 한다. 탁월했던 전작 영화에 대한 연결의 시도는 영화의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악마의 위력이 강력하게 묘사되지 않아 오컬트영화에서는 결정적 장면이어야 할 구마가 그다지 임팩트 있게 연출되지 않았고, 그 결과 관객에게는 전혀 무섭지 않은 오컬트영화가 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맥락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신앙인 관객에게라면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게 볼만한 점이 있는 영화일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 선 유니아 수녀가 바다는 푸른데 인간은 이렇게나 슬프다고 말하는 장면은 비신자 관객에게는 지나가는 대사일지 모르지만, 신자인 관객이라면 “인간이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릅니다.”라는 엔도 슈샤쿠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인상적이었던 성직자 주인공 수녀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부당하고 고지식한 권위에 냉소적인 태도로 욕설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의 태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만의 사명을 위해 고민 없이 간명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규칙과 전통의 경계를 과감히 넘어설 수 있는 태도, 왠지 모두 그립고 부럽고 부끄럽다.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