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미키 17》 (Mickey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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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소모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프린터 잉크로부터 시작하여 타이어, 배터리, 물티슈, 온갖 종류의 필터 등등 소모품이 없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더욱 광범위하게 말해본다면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이 소모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 만물이 다 소모품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어떤 경우에라도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생명이다. 그러나 실로 끔찍하게도 자본주의사회는 이 생명조차 소모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영화 《미키 17》은 생명이 소모품이 되어버린 시대에 대한 한 편의 우화다.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한국의 봉준호 감독은 이 성공을 또 다른 기회로 노린 어마어마한 미국의 자본과 함께 새로운 SF영화 한 편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짧게 요약하자면 《미키 17》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사채업자의 추심을 피해 결국 지구 밖으로 도망을 치게 된 처량한 최하층계급 노동자의 이야기다. 우주 탐사계획에 자리를 얻기 위해 아무런 기술도 장기도 특색도 없는 주인공 미키는 결국 문자 그대로 자기 목숨을 저당 잡혀 탐험대에 합류한다. 그는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어 살아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즉 소모품이 되어 끊임없이 죽었다 살기를 반복하는 생체실험용 몰모트 인간이 된 것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소모품이 되어버린 인간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우화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소모품이란 결국 쓸모와 관련된다. 그리고 ‘쓸모’라는 말이 따라붙는 인간은 보통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소모품이 된 미키를 무시와 비아냥과 혐오가 공기처럼 감싼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화적인 상징일 뿐일까? 생명을 소모품으로 여긴 세상의 실체를 우리는 매일매일 뉴스에서 보고 듣는다. 예를 들어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19세에 목숨을 잃었고, 소비자들에게 로켓배송을 약속한 쿠팡에서는 지금까지 무려 2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공장과 작업장에서, 파쇄기와 용광로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지만, 관리 책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확고한 추후 안전조치로 인해 사고가 사라지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소모품처럼, 금방 다시 교체될 뿐이다. 차이라면 현실의 인간은 SF의 인간과 달리 결코 다시 복제될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 정도다.
영화 《미키 17》은 소모품이 된 인간이 자신을 향한 무시와 비아냥과 혐오 속에서 자존감을 상실해 버린다는 사실 또한 잘 표현하고 있다. 언제나 타인에게 무시를 당하는 미키 17은 스스로도 자신을 무시한다. 그러기에 애인이 알려줄 때까지 외계생명체가 선의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자신을 향한 선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의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의와 배려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인간이 보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타인을 소모품으로 대하는 권력자 인간들과 달리, 그 인간들이 또 다른 혐오로 ‘크리퍼’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외계 행성의 고등생물들은 한 생명을 위해 모든 생명이 궐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외계 행성의 원주민 생명체, 이것은 한 생명을 소모품으로 다루는 인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 죽였어야만 했나?” 왜 죽이지 않고 살려줬는지를 묻는 질문에 외계인은 선문답처럼 이렇게 반문한다. 이 생명체의 천진난만한 대답은 미지의 낯선 존재를 향한 기본 설정값으로 ‘죽임’이 익숙한 인간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모든 생명은 귀하다. 그러니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 된다. 만일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타자의 생명은 오직 나 자신의 생명으로만 대체할 수 있다고. 실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어도 자본주의는 조금 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생명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일은 신의 뜻을 거스른다. 생명은 존귀하고 준엄하고 성스럽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렇게 주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런 일에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으십시오.” (신 19:21)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