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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정체성, 오직 예수이름으로만!” 요한계시록 19장 11절~21절

기사승인 2023.03.20  20:05:02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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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정체성, 오직 예수이름으로만!” 요한계시록 19장 11절~21절

 

 

1.백마와 탄 자, 메시아의 상징

 

① (11절) “또 내가 하늘에 열린 것을 보니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 앞서 사도 요한은 허다한 무리들이 부르는 승리의 찬송이 울려 퍼지는 광경을 보았다. 찬송의 가사는 둘로 요약된다. 음녀 바벨론이 통치하던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할 것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이 누릴 ‘의의 최후 승리’다. 본문은 앞서 부른 노래가 성취되는 광경이다. ‘백마와 탄 자’가 등장해서 오만과 탐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붉은 짐승을 탄 음녀’에 대한 심판을 마무리한다. ‘백마와 탄 자’는 누구인가? 이단사이비 교주들의 퍼포먼스처럼 실제로 백마를 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흰말과 그 말을 타신 분’은 예수그리스도다. 17장의 ‘붉은빛 짐승을 탄 큰 음녀(큰 성 바벨론, 적그리스도)’와 대비된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네 명의 말을 탄 기사처럼 ‘백마와 탄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이름은 존재의 항구적 본질을 나타내는 정체성(identity)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충신(신실한 믿음)과 진실(참, 진리)이다. 이와 대조되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음행(우상숭배)과 거짓이다. 본문이 전하는 핵심은 백마를 타신 분과 붉은 용을 탄 음녀, 곧 예수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지는 영적 전쟁이다. 빛과 어둠, 참과 거짓, 믿음의 정절과 음행의 우상숭배, 순교자와 배교자의 싸움을 나타내는 은유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싸움까지 확장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엡 6:12)”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어둠은 빛의 부재(不在)일뿐이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염려는 믿음 없음이다. 믿음이 있으면 염려는 사라진다. 불평은 감사 없음이다. 감사하면 불평은 사라진다. 교만은 은혜 없음이다. 은혜를 기억하면 겸손해진다. 프란치스코의 기도 속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녹아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는 예수그리스도다. 사도신경에 고백하는 대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는 예수그리스도다. 이단사이비 교주들은 스스로를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사칭한다. 사도신경은 이단사이비 교주들이 가짜인 이유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도구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지 않았고, 십자가에 죽은 적도 없고, 사흘 만에 부활하지도 않았고, 하늘에 오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오실 재림주가 아니다. 이단사이비 교주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코스프레를 한다. 백마를 타는 흉내를 낸다고 해서 모두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칭 메시아는 이단사이비 교주들만이 아니라 유사 이래로 자신을 우상화하고 신격화시킨 모든 정치·종교지도자들도 포함한다. 그리스도 아닌 것이 스스로 왕 노릇 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적그리스도다.

 

② (12절~13절)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 흰말과 그 위에 타신 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계 2:18),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예수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구분해야 한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물질과 명예, 권력과 쾌락도 그리스도가 아니다. 위대한 업적이나 신비한 권능을 내세우며 자칭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며 스스로 왕 노릇을 하는 모든 것들이 적그리스도(이단)다. 세례요한은 진정한 종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8,30)”

 

③ (14절~16절)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하늘에 있는 군대’는 천군이다. ‘천군 미가엘(단 12:1)’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천군이다. 천국 백성이 소속이 천국이듯 천군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군사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계 2:12)...철장으로 다스리며(계 2:27)...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 14:19)’ 모든 말씀들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주님은 예수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5~6)”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나 주인 노릇하면 안 된다. 주인 노릇하는,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다. 이천 년 교회사 속에 다양한 그리스도 교회가 존재한다.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 정교회(Orthodox Church),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크게 셋으로 구분한다. 신앙과 직제는 서로 다르지만 오직 하나에서 일치한다. 동일한 사도신경을 가지고 오직 예수님만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점이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이다. 예수그리스도 외에 다른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면 그것이 적그리스도다.

 

 

2.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① (17절~18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 (메시지성경) ‘나는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하늘을 날고 있는 모든 새들에게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잔치에 오너라! 와서 왕과 장군과 전사와 말과 그 말을 탄 사람들의 살을 배불리 먹어라. 자유인이나 노예나 작은 자가 큰 자나 할 것 없이, 그들 모두를 너희 배가 찰 때까지 먹어라!’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는 앞서 살펴 본 어린 양의 혼인잔치와 맥을 같이 한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청함을 받고 예복을 준비한 자들에게는 잔칫날이지만 청함을 받고 택함을 입지 못한 자들에게는 제삿날이 되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전한다. 본문은 마치 고대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죽은 시신들이 까마귀의 밥이 되는 참혹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인자의 날에 관한 말씀의 결론과 일맥상통한다.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눅 17:22~37)”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있는 곳에서 어김없이 벌어질 광경을 묘사한다.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역사 속에 등장했던 대제국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역사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아무리 위대한 인물들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그 날에 무론대소하고 남김없이 공중 나는 새와 같은 한낱 미물에 의해 소멸될 것을 예고한다. ‘영원한 제국도 영원한 인생도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말씀이다.

 

 

3. 새가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① (19절)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짐승과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 ‘또 내가 보매’ 새로운 비전이라기보다 앞서 살펴본 12장에서 18장까지의 모든 말씀을 한 문장으로 총정리 하는 말씀으로 해석할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 짐승(붉은 용)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과 ‘그 짐승(백마)과 탄 자와 그의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다시 말해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은 12장 붉은 용, 13장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 새끼 양과 같은 짐승, 17장 큰 음녀가 탄 짐승, 18장 큰 성 바벨론과 상고들을 통칭한다. ‘그 짐승과 탄 자와 그의 군대’는 흰말을 타신 분 곧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와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으신 예수그리스도와의 영적 전쟁이다. 본문은 이 둘 사이에 벌어졌던 길고 오래된 영적 전쟁의 최종적인 결말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② (20절)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 (메시지성경) ‘나는 그 짐승과 그와 함께 모인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그 말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에 맞서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붙잡혔고, 그와 함께 그의 꼭두각시인 거짓 예언자, 곧 표징을 일으키고 짐승의 표를 받고 그 형상에게 예배한 이들을 현혹시키고 속였던 자도 붙잡혔습니다. 그 둘은 모두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오만과 탐욕의 화신 큰 성 바벨론의 결말은 지옥이다. 그들에게 미혹되어 그들을 좇아 살던 이들의 결말도 동일하다. ‘유황불 붙는 못’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본문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다.

 

③ (21절)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어지는 말씀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8)”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 땅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풀과 꽃처럼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남게 될 것을 증거 한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매우 난해한 본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새가 연약한 미물을 가리키는 은유로 자주 쓰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시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새에 관한 은유들이 전하는 말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한마디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한마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는 오늘 말씀의 결론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새의 모이가 될 큰 성 바벨론의 최후를 ‘똑똑히 보라’는 것이다. 무론대소하고 한낱 미물의 먹이로 사라질 것들이니 지금 그들의 만행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지금 그들의 위세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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