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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기사승인 2023.12.04  23:06:56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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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

소설가 정지아는 그의 첫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에서 묘사하듯 그의 부모는 실제로 1948년부터 약4년간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두 차례 약 20년 동안, 어머니는 7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평생을 빨갱이로 낙인 찍혀 살았다. 

실패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진지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 박고 죽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었던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3일 상을 치르는 동안 다양한 조문객을 통해 전해 듣는 아버지의 생시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아버지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소설은 아버지를 비롯하여 등장인물 한명 한명을 역사 속의 인물로 흥미롭게 묘사한다. 유쾌한 문장 속에서 웃다보면 어느새 울게 되는 감동과 재미가 있다. 주변 동료들과 ‘항꾼에(같이, 함께 뜻의 전라도 사투리)’ 읽고 싶은 책이다. 

오갈 데 없는 방물장수 여인을 딱한 ‘민중’으로 여겨 하룻밤 재워 주었다가 마늘 반접을 도둑맞은 이야기와 ‘새농민’을 교본 삼아 농사를 짓다가 번번이 낭패를 보았다는 ‘문자농사’ 이야기에서 ‘진지 일색’의 아버지의 삶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교련선생인 박선생을 ‘통일의 방해꾼’이라고 티격태격 하면서도 친한 친구로 지냈다. 이런 자가당착의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그래도 사람은 갸가 제일 낫아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현실의 삶 속에서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늘 부대끼는 사람을 먼저 보고 인간다움을 실천했다.

빨갱이인 아버지를 집안의 화근이라고 원망하며 원수같이 지냈던 작은 아버지의 숨은 과거도 밝혀진다. 난리 통에 철없던 어린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형을 자랑하고 다니다가 외지의 군인들에 의해 할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학살되고 마을이 불탔던 것이다. 작은 아버지의 원망은 자신이 목격한 가혹한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여순사건에서 외지인의 이런 잔인함에 대해 “몰르는 사랑잉게 총질을 해대제, 구례사람끼리는 안그랬어야, 뽈갱이든 퍼랭이든 노상 얼굴을 보고 살았는디 총이 겨놔지가니”라고 말했다.

또 아버지는 빨치산 보급 투쟁중에 민가에 숨어든 순경을 동지들 몰래 살려 주었다. 구사일생 살게 된 순경이 빨치산에 자원하겠다고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질 것이 뻔한 싸움’이라며 사상도 신념도 없는 그를 돌려 보낸다. 자신은 사상과 신념을 위해 목숨걸고 싸웠지만 그보다 아버지에게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아버지는 빚보증을 서주었다가 힘들게 모은 돈을 다 날리는 낭패를 겪는 데 이럴 때마다 십팔번처럼 “사람이 오죽하믄 글겄냐”라고 말했다. 국가는 아버지를 빨갱이라고 철저히 격리했지만 아버지는 같은 지역에서 얼굴 맛대고 사는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는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죽은 친구이자 동지의 아내였던 어머니와 재혼을 했다. 어머니가 죽은 전 남편과 비교하며 핀잔을 주어도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농담을 하며 넘어갔다. 산에 있던 4년동안 아버지는 곁에서 숱한 죽음을 겪었으니 살아남은 그의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하며 살았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던 딸은 유물론자였던 아버지의 유언 “죽으먼 썩어문드러질 몸땡이 암 디나 뿌레삘라고”에 따라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유골가루를 뿌리며 뭉쿨한 감회에 젖는다. 아버지는 산에서 죽은 동지들의 몫까지 살아내는 인생역정을 거쳐왔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는 지극한 마음으로 이 작은 지역에서 인간적 유대를 만들어 왔다. 국가는 실패한 사회주의자로 낙인을 찍었지만 아버지는 차별이 없는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는 그의 삶에 동행한 모두에게 희망의 약속으로 기억되었다.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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