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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에 대한 부당한 정죄는 철회되어야 한다!

기사승인 2024.02.29  02:19:09

박충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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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에 대한 부당한 정죄는 철회되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지도자들이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기 보다는 조롱과 폄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고 옛 규범을 권위주의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위한 인문사회학적인 통찰을 보여준 바우만(Gygmunt Bauman)의 관점을 빌어 말한다면, 우리는 동료 성직자를 과거의 규범을 가지고 정죄하는 옛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오늘 이 시대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현대인의 삶의 의미를 일깨우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할 수 있도록 스스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감리교 지도자들이 우리 시대의 정신을 꿰뚫어 보는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의문한다. 특히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라는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의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접하며 이런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경양 목사께서 자세히 밝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의 하자 있는 결정과정을 살펴보면서 나는 왜 그들이 장정이 규정하고 있는 법과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이동환 목사를 정죄하고 있는지 납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목사가 성소수자를 위하여 축도를 한 것이 왜 감리교 목사로서 교리와 장정을 위배한 것이고, 따라서 그를 감리교 목사로서의 존재 가치를 아예 박탈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판단했는지 기독교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행위를 징벌하려면, 그 행위가 명시적인 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이 재판에서, 감리교 목사의 축도 행위가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의 눈에 명시적인 악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추정적 판단인가 아니면 사실판단인가? 내가 보기에는 사실 판단이 아니라 추정판단이다.

목사의 축도 행위는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감리교회가 감리교 목사에게 준 영적 권위이다. 이 권위를 제 3자가 가타부타하며 침탈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목사의 축도가 범죄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런 억지를 부린 이유는 이동환 목사의 축도가 성소수자를 향한 것이었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목사가 중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찾아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하는 행위를 두고 선악을 판가름 하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성소수자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논란은 기독교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학문적으로 사실 종료된 것이다. 인간의 사적 삶의 영역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은 지시적인 것이지, 규범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성소수자가 적발이 될 경우 야만적으로 돌팔매질을 하거나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당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형법상 사형이라는 중벌제도가 있지만, 법이 있다고 하여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일은 그 도덕적 정당성이 희박하므로 김영삼 정권 이후 준 사형 폐지국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국가의 권위란 인권을 위한 것이지, 인권을 박탈할 권위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는 사법부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쉽게 했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이해가 폭넓게 승인된 오늘날 과거의 규범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종교집단 안에서 사형에 준하는 결정을 절차와 과정을 어겨가면서 집요하게 관철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교리와 장정에서 동성애에 대하여 금기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동료 목사의 목회자로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는 같은 목사 집단이 행해서는 안 되는 반인권적인 행태이다.

나는 우리 교단의 장정을 모든 감리회의 회원들이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장정의 어떤 조항이 보편적 인권의 정신을 위배한 것이라면 구속력을 상대적으로 상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성소수자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이해는 각기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판단 능력에 따라서 내릴 문제이지, 어떻게 성소수자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반인권적인 규범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맹종하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러한 장정 규정의 지시적인(indicative) 의미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야릇한 공포를 조장하며, 마치 동성애가 인류사회와 가정, 교회를 파괴할 것이라는 악의적인 선전에 좌지우지되는 장정 개정위원회의 결정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개신교는 종교개혁 당시 윤리적 가치 판단을 가톨릭교회 성직자가 독점하며 신자들을 감시 감독하던 권한, 즉 교도권(teaching authority)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개신교가 교도권을 포기한 것은 성직자의 판단이 신자들의 판단보다 언제나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죄론, 즉 개신교 교리적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가진 규범을 모두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교도권을 포기하는 대신 신자들에게 이것이 기독교적인 삶에 더 적합한 것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감리회가 동성애 관련 문제를 장정에 넣은 것은 “이런 원칙을 따라 살자.“라는 의미이지, ”이 규정대로 살지 않으면 죽인다.”라는 의미로 읽지 않는다.

교회의 판단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판단은 인간 존중의 정신에서 사회의 수준보다 낮아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하나의 사회악으로 간주되고 있고, 헌법상 동성애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들이 가진 지극히 사적인 영역, 즉 성적 취향이다. 하지만 정신 의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는 동성애적 취향을 비정상적 이상 징후로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 1975년 이후 세계의 큰 흐름이다.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하여 정죄할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정죄할 권리가 교회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정죄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이 대부분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악의적 선전이 너무나 많은 것도 이런 위선을 키우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벨기에, 심지어 동구권이나 대만에서도 동성애자 혐오나 차별은 인권 침해 범죄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본다면 경기연회 재판위원들의 판결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나는 본다. 이런 결정은 서구의 시각에서 본다면 범죄행위다.

무엇보다 나는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의 결정은 감리교의 신학 전통이나 웨슬리의 정신에서 많이 빗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웨슬리는 장로교 신학자 요한 칼빈의 시대나 루터교회 신학자 마틴 루터의 시대에 비하여 근 200년이나 현대 세계에 가까운 목회자요 신학자였다. 16세기 계몽주의 시대정신이 루터나 칼빈을 이끌었다면, 웨슬리의 시대정신은 인권 혁명이 일어난 18세기의 정신을 담고 있다. 웨슬리는 1776년에 선언된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알고 있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정신의 핵심은 정치권력이나 종교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선언이었다.

루터와 칼빈의 저서를 읽어보면 정죄와 심판의 소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웨슬리의 글은 그렇게 포악하지 않다. 심지어 웨슬리는 중세의 편협한 시대가 지나가고 온 세계가 서로 연결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른 종교의 존재 이유도 긍정적으로 바라본 사람이다. 가톨릭 지역을 방문했다가 온갖 모욕을 다 당한 후, 그는 종교의 편협함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는 최종적인 정죄자의 자리에 서려 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신이 감히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적이어야 한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다. 편협한 것이 교회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교회를 능력 있게 만들고, 사람을 구원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온 사회로부터 정죄를 받고 있는 동성애자를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목사의 축복권을 행사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행위를 정죄하는 행위야말로 복음의 정신이나, 개신교 신학 전통에서나, 웨슬리 신학의 관점에서도, 그리고 현대 인권론의 관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교회의 거룩함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감리회의 최고 재판위원회인 총회 재판위원회 위원들께서는 부디 복음과 개신교 신학 전통, 그리고 웨슬리의 관용의 정신을 따라, 이동환 목사를 부당하게 정죄한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의 결정을 바로 잡아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긍지를 올곧게 지켜주시기를 앙망한다.

 

 

 

2024년 2월 28일

박충구 목사
전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 윤리학 교수

   
 

박충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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