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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기사승인 2024.04.13  07:27:50

김종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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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박훈, 어크로스)

4월3일 “노 재팬? 이젠 없어서 못 산다…일본어만 가득한 과자, 50만개 '완판'(머니투데이 2024.04.03.)”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마트에 일본 맥주가 사라지고 일본 저가 패션인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 운동 그리고 정부에선 ‘소부장’이란 내용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료를 한국에서 자체 개발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지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은 간사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감정적일까? 친일 친미 친중 반일 반미 반중 이런 말들이 정치와 뉴스에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 사회의 반일 정서는 뿌리 깊고 강력하다. 그런데 반일의 강도에 비해, 일본을 냉철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일본에 대한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가운데, <위험한 일본책>을 소개받았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도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대학교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근대 일본의 변혁 과정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연구, 강연,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서로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근대화와 동서양》(공저), 역서로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등이 있다.(교보문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욕먹을 각오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일본 사회의 특징,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과정, 제국주의와 천황제 등 진짜 알아야 할 일본과 한일관계에 대해 세밀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일본이라면 무조건 “노!”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1부 가까운 나라, 판이한 문화- 한일 역사의 갈림길
   1장 한국과 일본, 비슷한 듯 다른 듯
   2장 메이지 일본을 강하게 만든 힘
   3장 임기응변과 면종복배의 나라, 한국
2부 무시와 두려움 사이- 한국과 일본 상호 인식의 덫
   4장 조선이 망한 것은 반일 감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5장 한국이 일본 밑에 있어야 한다는 묘한 심리
3부 콤플렉스를 넘어서 미래로- 일본을 다루는 법
   6장 천황의 국민, 공화국의 시민
   7장 민족주의의 바깥을 상상하다
에필로그 일본을,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

일본의 발전에 대한 흔한 오해는 이렇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수해왔다. 미개했던 섬나라가 메이지유신으로 운 좋게 변신해 벼락출세했고 부강해졌다. 이때 일본에 뒤처진 조선은 근대화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권까지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다.' 하지만 720년 일본 인구는 당시 1300만 명이던 조선을 크게 앞섰다. 은 채굴에 성공하면서 획기적인 경제성장이 일어난 거다. 농업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도시화도 진전된다.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 막부 등이 앞장서 번교와 향교를 지으며 학문을 장려한다. 사숙들도 번성했고, 지방 국립대에 해당하는 번교가 막부 말기에 이미 200개가 넘을 정도로 교육 폭발사회가 된다. 더 이상 전투에 나갈 일이 없어진 젊은 사무라이들이 학문과 학교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열심히 공부했다. 사무라이들의 학문 네트워크는 나중에 메이지 유신까지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되었다. 실은 이 맹렬한 공부 붐이 근대 일본을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재의 독서대국, 노벨상 수상이 나오고, 학문적 성취가 높은 일본은 그런 축적 위에 서있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역사상 1000번에 가까운 외침에 시달렸다. 일본이 외침을 당한 것은 놀랍게도 딱 두 번이다. 13세기 몽골군이 북규슈에 침입하다가 태풍으로 물러난 것이 첫 번째고, 또 한 번이 태평양전쟁의 미군이다. 이렇게 외침이 적었던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한반도는 중국대륙과 유목민족의 각축 속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계속 전화에 휩싸였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가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 고립된 섬으로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지질학적으로는 지진이 잦아 지옥 같다고 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백 년 동안 사무라이 무인들의 통치를 받아온 일본인은 질서를 잘 지키고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문화가 강하다. 제각기 분수가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당시 사무라이는 칼을 차고 다니면서 무례를 범하는 사람을 베었을 정도였으니, 질서를 어기는 것에 대한 공포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도쿠가와 시대 일본은 마치 수백 개의 상자가 위 아래로 서열처럼 쌓여 있고 그 안에서 분수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회였던 것이다. 지금 일본에 백년 이상 가게가 많은 것도, 모든 것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것도 바로 이런 상자 사회의 결과로 보인다.

반면 조선의 지배세력 양반은 무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론과 주의, 주장이 무기였다. 또 중앙정치권력이 바뀌면 지방권력도 하루아침에 바뀔 정도로 중앙 집중적인 구조라,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고 뒤바뀌기도 하는 역동적인 사회였다. 지역이동도 유동적이었다. 현재도 남아 있는 강한 신분상승욕, 정치 집회, 여론 정치는 그 전통 위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민심의 나라라면, 일본은 야쿠닌, 즉 관리의 나라이다. 시민은 시민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고, 정치는 위정자, 엘리트의 일로 보는 거다. 코로나 때 일본이 그렇게 시스템이 빈약하고 피해가 많은데도 모두가 조용했던 이유가 조금 이해되는 느낌이다.

메이지유신은 1868년에 교토 궁궐에서 벌어진 쿠데타로, 270년 집권했던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다. 메이지정부는 이후 근대화 정책을 전광석화처럼 펼쳐서 근대화로 나아간다. 완벽한 변혁인데, 왜 혁명이란 말을 쓰지 않을까? 혁명이란 역성혁명의 준말이다. 하늘이 어떤 성을 가진 로열패밀리에 내렸던 천명을 거둬들이고 다른 성으로 바꿔버린다는 뜻이다. 왕조교체다. 왕씨 고려에서 이씨 조선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왕조를 폐하거나 역성혁명에 쓰는 용어가 혁명이기에 혁명대신 유신이라 한다. 만세일가의 천황가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인식되면 안 되기 때문에, <시경>에 나오는 유신이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내용은 혁명적이었다. 변혁을 주도한 하급 사무라이는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사무라이 신분 자체를 철폐한다. 스스로의 계급을 배반했다 하여, '계급적 자살'이라고도 표현한다. 근대화에 목숨을 걸어, 단 반세기만에 농업국에서 뛰어난 공업국으로, 필사의 도약을 이룬 거다. 메이지 유신에 의한 권력이 교체 과정은 질서 있게 이루어졌다. 구 막부 체제의 다이묘와 가문은 생존을 보장받았다. 계급투쟁도 민중 봉기도 없었다. 메이지유신의 총희생자는 3만 명, 프랑스 혁명의 70만 명 희생자에 비하면 소수라고 해야겠다. 

저자는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막부와 반막부의 투쟁은 개혁과 수구의 싸움이 아니라, 개혁경쟁이라고 정의한다. 개방경쟁도 했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자기 지역을 개항장으로 만들려고 했고, 서양열강에 개국 의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국제정세를 간파하고 재빠르게 선진문물을 배우는 데서 살 길을 찾은 것이다.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도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했는데, 우리에 비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적다. 우리의 반일감정이 유별나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본의 악행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조선 식민지화의 특성 때문이다. 
첫째, 같은 문화권의 이웃나라다. 대부분 제국주의는 멀리 떨어진 나라를 식민화하는 데 반해, 조선은 오랜 이웃이자, 중화질서의 우등생으로서 일본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전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등장하고 제국주의가 해체되는 그 시기에 가장 늦게 식민지화가 된 것이다.
셋째,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일본은 동화정책과 차별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했고 조선에 투표권과 입대는 허용하지 않는 이중 정책을 썼다. 만약 투표권을 부여하면 조선에서 일본의회의 3분의 1을 차지했을지 모른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은 전쟁범죄였다. 청일전쟁 후 러일전쟁으로 치닫고, 한국 병합과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다가 1941년 12월 진주만에서 일본은 문자 그대로 자폭한다. 잘 나가던 일본이, 군국주의로 흐르면서 완전히 망하는 길로 들어선 거다. 저자는 일본은 영국의 전략을 따랐어야 했다고 본다. 영국은 4~5만 명의 적은 육군만을 유지하면서 유럽대륙에 간섭하지 않고 대신 해군 증강에 힘써 지금 같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듯이. 

일본 천황을 우리 언론에서는 일왕으로 표현하는데, 저자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있다. 적국이 아닌 한 그 나라의 호칭을 존중해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가 아니냐는 거다. 그들이 왕이라 하든 옥황상제라 하던 그들 명칭을 따라주면 되지 않느냐는 거다. 천황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낮아지는 걸까? 하면서 독자들의 여러분 생각을 물어본다. 저자는 일본을 단순히 악마화할 게 아니라, 불편한 진실도 직시하자고 말한다. 안중근에게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만이 아니라 근대 일본을 디자인하고 실행한 이토 히로부미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일본 비판은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라 뼈 때리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유흥준 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의 고대문명은 ‘죄다 우리가 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한다. 우리는 일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 정치 세력이 이를 막고 있는 것 같아 당분간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추가: 독후감을 마무리하는데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왔다. “욱일기 공공장소 허용' 국힘 서울시의원 발의 하루 만에 철회(https://v.daum.net/v/20240404181815350)”. 과연 언제까지 이런 사건이 계속 벌어질지 참 씁쓸한 생각으로 독후감을 끝낸다.  

김종일 ((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

김종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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