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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가해자’에게 경고합니다

기사승인 2024.04.18  01:44:01

이관택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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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구현해야 하는 장애 정의>, 에이미 케니, 권명지 역, 이레서원, 2023)

 “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그리스도인인 저자 에이미 케미가 내세운 제목이 사뭇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제목으로 사용된 문장에 들어있는 핵심 단어는 단연 ‘몸’과 ‘기도’일 것이다. 여기서 몸은 저자의 장애인 당사자로써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고, 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 문제는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닌 저자가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굳이 몸과 기도를 연결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 있다. 

 책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저자의 놀라운 성서해석 능력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성서 여기저기에 담겨있는 장애 이야기를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의 복음적인 테두리 안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해내는 저자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저자가 얼마나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미국 사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애와 관련된 이슈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날카롭게 분석하는 모습을 통해 저자가 얼마나 그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 진다. 왜 저자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을까?      

 답은 책 속에서 줄곧 언급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소위 ‘기도하는 가해자’들이다. 저자 에이미 케니는 책의 모든 챕터 속에서 ‘기도하는 가해자’들로부터 당했던 폭력적인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행동과 말로 저자의 삶을 끊임없이 무너뜨렸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너를 위해 기도할게”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너의 장애가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고, 때론 죄스럽고, 없애야 할 것이기 때문에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수시로 다가와서 저자의 머리와 등에 손을 올리고 읊조리는 기도야말로 폭력과 공포 그 자체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어디를 가도 기도하는 가해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기도하는 가해자들은 ‘에이블리즘’(장애를 본질적으로 비정상적이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관념)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무지와 폭력성을 상대방에게 여과 없이 표출한다. 그들의 신앙 체계 안에서는 죄와 장애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마치 죄를 없애듯, 장애를 없애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믿고 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이들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에이미는 장애인으로 살아갈 때 가장 힘든 부분은 통증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의 삶 가운데 언젠가는 사람이 아니라 몸의 통증이 최악의 요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천국에는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없다네.’ -에이미 케니-
 
 에이미는 이 책을 통하여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창조하시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심지어 장애를 통해 더욱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가시는 그 분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에이블리즘을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또한 기도하는 가해자들에게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다음은 책 속에 나타나 있는 에이미의 말들이다. 

“내가 진정 해방되고 싶은 대상은, 장애는 본질적으로 비정상적이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관념뿐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장애 입은 나의 몸은 성령님의 성전이며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우리는 장애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하나님의 광채를 비출 수 있는 내 능력이 내 장애 때문에 제한받는다는 관념에서 해방되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대상은 에이블리즘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스가랴의 맹인 됨은 그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개인이 신체적 손상을 경험하더라도 그 한 사람이 공동체에서 방출되거나 공동체의 호혜에 참여하지 못할 때에만 장애로 인식된다.”

“치료와 치유 간에 차이가 있고, 교회는 느리지만 어려운 치유의 길을 가야 하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결과가 어찌 되든 서로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아픈 이들에게 기름을 붓고 곁에 있어줘야 하는 부르심을 받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이런 대우를 거부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한 모습을 제거 대상이 아니라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도록 초청받는다.”

“장애를 가진 우리는 깨지기 쉬운 인간의 상태에 대한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예언자적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우리의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몸도 다른 몸보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설교나 예배 의식, 혹은 찬송가도 장애인들의 소속감보다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불편한 감정과 다른 누군가의 소속감은 절대 경쟁 상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만 아무도 편하지 않은’ 신성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저자의 말에 따옴표를 치고, 한 번 더 되내이면서 비단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장애’에 관해서만 가져야 할 인식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에이블리즘’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이즘’이라는 편견에 갇혀 또 다른 ‘기도하는 가해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예수님의 삶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소수자들을 오히려 억압하고, 혐오하는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 전반과 교회사의 신앙 고백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도하는 가해자’에게 경고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목소리 중 하나이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당신이 성취하든 망치든,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다. 이를 얻기 위해 애쓰거나 당신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당신의 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다.” -에미이 케니-

라오스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이관택 

 

이관택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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