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새로 쓴 그리스도인의 개종 이야기>, 이덕주,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이덕주 교수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개종 이야기>는 책 제목부터 흥미롭습니다. 개종이란 말이 그렇고, 이야기란 말이 그렇습니다. 개종이란 인생의 자리를 옮기는 것이요, 역전(逆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진감과 드라마적인 요소를 기대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덕주교수는 흥미로운 한국 초기 그리스도인의 개종 이야기를 시종 차분한 어조로 들뜨지 않게 내면적인 변화와 사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총 30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간략한 평전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덕주 교수는 이를 <초기 전도인>, <신학 사상가>, <민족 운동가>, <목회자>, <신앙 운동가>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의 인물들로 구분하여 각 유형마다 6명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섯 유형의 인물들을 구분하는 외적인 특징이 실은 각 인물의 내적인 특질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초기 전도 활동에 종사했던 서상륜, 김창식, 백사겸, 김종섭, 박성춘, 이화춘등은 대부분 상민 내지 민중 계층이라는 점이나, 신학 사상가로 분류되는 이수정, 최병헌, 유성준, 김정식, 윤치호, 최대용 등은 대부분 양반 지식층 출신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게다가 목회 행정가로 구분된 방기창, 양전백, 장석초, 양주삼, 황종률, 이명직 등에게서는 개종하기 전에 대부분 강한 출세욕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민족 운동가로 구분되는 이상재, 이승훈, 구연영, 전덕기, 신석구, 천세봉 등에게는 민족 개념이 기독교 신앙과 선구적으로 융합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초기 그리스도인의 모습 속에는 개별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하나님께서 제대로 사용하셨다는 많은 증거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 첵의 가장 큰 덕목은 한국 그리스도인의 개종을 통해 한국인들이 서구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덕주는 한국인 기독교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초기의 모험적이고 선구적인 한국 기독교인들이 생소한 외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여 어떻게 한국인의 삶 가운데 적용했는지, 그 열정과 고민에 관심을 두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관점이 이덕주 교수가 말하는 토착화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는 토착화를 이야기에 담아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복음을 수용한 조상들의 신앙 이야기, 그 신앙의 갈등과 조화의 이야기, 그 시대 속에서 정착하는 공동체의 이야기.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그 이야기의 뜻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역사라는 그의 역설(力說)은 이 책 속에서 오롯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입니다. 딱딱한 복음의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한편의 생생한 이야기에 목마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생명 가득한 이야기를 만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급한 김에 예화라는 죽은 이야기라도 뒤적이게 마련입니다. 예화의 홍수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인의 개종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까닭은 지금도 깊고 다양한 생명의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으며 덤으로 받은 질문 하나. ‘나는 작지만, 생생한 생명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진실한 그리스도인가?’
이광섭 목사 (전농감리교회)
이광섭 h-stair@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