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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동방박사> 헨리 밴 다이크 저, 박미현 옮김, 위성동 그림, 생명의말씀사, 2001)
오늘은 성탄절이다. 성탄의 의미를 뭐라 규정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날’, ‘인류에 구원이 선포된 날’, ‘무한이 유한 속으로 들어온 날’,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기적’ 등 많은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2,000년 전의 예수 탄생 사건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 성탄의 진짜 의미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것이 대림(Adventus)의 의미이다. 이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무엇인가 성취하는 사건이 아니라, 전적 타자이신 메시아가 다시 역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사건이다. 주도권이 전적으로 그분께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다림은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부르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수동적인 적극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적극적인 수동성’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표현에 모순이 있지만, 굳이 대립하는 두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탄절의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 삶은 이미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 사이에서 맡겨주신 소명을 가지고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탄을 무엇으로 기다릴까? 그리고 성탄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필자는 성탄절마다 반복해서 읽는 책 한 권 있다. 양장으로 된 작은 동화책인데 정가가 4,000원인 것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신학생 때 구입해서 벌써 수십 년을 성탄절마다 동행했다. 헨리 밴 다이크(Henry van Dyke)의 “네번째 동방박사”라는 책이다. 본서는 성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짧은 내용과 삽화가 담겨있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동화책이지만, 그 내용과 깊이를 헤아리기에는 어른도 버겁게 느껴진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울림과 떨림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반적인 전승에 따르면 주인공은 세 명의 동방박사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외에 또 다른 한 명이 있음을 소개한다. 네 번째 동방박사 아르타반이다. 그는 다른 박사들과 함께 존귀한 보물을 준비하여 아기 예수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지만, 전혀 다른 모험이 그의 인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타반은 세 명의 동방박사와 함께 메시아를 경배하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는 메시아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세 가지 보물(사파이어, 루비, 진주)을 준비했다. 아르타반은 베들레헴 인근에서 세 박사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아르타반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친다. 지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르타반은 이 사람을 정성스럽게 돌본 후에 급히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아기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가난하고, 지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르타반은 긴 세월을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며 메시아를 찾아다니며 세월을 보낸다. 누군가가 보기에 아르타반은 타향을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실패자, 파산자,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숙자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3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르타반은 골고다라는 곳에서 죄인들이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중 한 사람이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것이다. 평생을 찾아 나선 그 이름! 죽음을 앞둔 메시아를 만나러 가는 그 순간에, 아르타반은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는 소녀와 마주한다. 그는 평생을 간직했던 마지막 보물인 진주를 소녀의 몸값으로 지불한다.
끝내, 아르타반은 메시아를 마주하지 못한다. 그의 평생의 소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모든 보물은 메시아에게 드려지지 못하고, 누군가를 돕는 일에 쓰였다. 그는 삶의 목적과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로 보인다. 아르타반은 말한다. “33년 동안 저는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며, 섬겨 드린 적도 없습니다. 나의 왕이시여.”(91) 그러나 희미하게 이런 음성이 들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네 번째 동방박사는 메시아를 만나지 못했지만, 메시아를 만났다. 그는 그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꿈을 이루었다. 그의 보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는 데 쓰였다. 그가 메시아를 찾아 나섰던 33년의 세월은, 그가 메시아와 동행했던 평생의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에 참여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도전을 준다. 나는 무엇으로 그분을 경배할 것인가? 메시아에게 드릴 존귀한 보물을 어떻게 준비할까?
우리가 뵙기 원하던 평화의 왕은 세상에 죽기 위해 오신 피투성이 왕이시다. 그분을 찾아 나서는 길 위에서 우리는 이미 그분을 만나게 된다. 오늘 만나게 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실지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교회)
신동훈 마포 꿈의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