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모든 신도들에게 칭찬받는 여집사 P는 교회 꽃꽂이부터 식당 봉사까지 열심히 하고 늘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챙긴다. 교인들은 그녀에 대해서 성격도 싹싹하고 믿음도 참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P 집사가 현재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오래전 P 집사와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전혀 다른 평을 한다. 그녀가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자기 윗사람들에게는 입안의 혀처럼 살살거리고 아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P 집사는 얼마 전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믿음 좋은 척, 헌신하는 척 애를 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모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물론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사모와 둘이 있을 때는 마치 자기 직장 아랫사람을 대하듯 무시하는 듯한 냉소적인 눈빛과 태도로 기분 나쁘게 대한다. 사모는 그렇게 이중적인 태도로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P 집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 P 집사의 태도를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이중성이다. 그들은 마치 2개의 인격을 가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장소에 따라,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 그들은 2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나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 할 때 사용하는 접대용(대외용) 얼굴과 사적으로 아주 밀접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내부용(진짜) 얼굴이다.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 그 얼굴엔 냉소적이고 어둡고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친절했던 나르시시스트의 표정은 제삼자가 사라지는 순간 즉시 냉랭하고 음산하게 바뀐다.
피해자 앞에서의 그들의 내부적 얼굴의 진짜 모습과 대외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접대적 얼굴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피해자에게는 너무도 큰 고통을 주지만, 피해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너무도 이미지가 좋아 보인다. 대외적으로 그들은 멋진 겉모습으로, 또는 선행으로, 근면 성실함으로, 신앙심으로, 남들보다 빛나는 모습으로, 포장되고 너무도 싹싹하고 친절하며 호탕한 미소로 호감 가게 굴기 때문에 이들이 피해자와의 사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거라고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더 억울하고 답답해진다. 그들의 연기력과 교묘함 때문에 피해자가 이들의 이중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산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가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가면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대외용(접대용) 얼굴과 내부용(진짜) 얼굴,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가면을 벗을 때면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변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르시시스트들이 대외적 얼굴에서 진짜 얼굴로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이다. 아주 놀라울 정도로 가면을 썼다 벗었다를 순식간에 아주 자연스럽게 해낸다.
이들은 안으로는 피해자의 정서적 에너지를 갉아 먹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사람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피해자에게 늘 자신이 얼마나 대인관계가 좋은지를 어필하고 과시한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일삼는 그들은 가면을 벗으면서 자신은 정말 착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해맑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이중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다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들은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나르시시스트의 미성숙한 자아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연약하고 미성숙한 자아를 그대로 드러내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자기를 포장하고 과장하고, 거짓말과 조건적인 호의를 통해 스스로를 중무장한다.
이들은 사람을 나눌 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강한 사람, 즉 승자와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패자, 그리고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이들이나 공적인 관계의 사람들로 나누는데, 패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평판 관리의 영역’으로 놓아두고, 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착하고, 나이스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접대용 얼굴을 사용한다.
반면 가까운 관계에 있는 연인이나 가족, 그리고 본인에게 맞춰주는 친구나 본인보다 직위가 더 낮고 자신을 우러러보는 후배 등, 본인보다 약자라고 생각하여 패자로 여기는 이들을 ‘착취의 영역’에 놓아두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공급처로 삼는다. 불안정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의 인정과 칭찬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이 착취의 영역에서 자신이 먹잇감으로 여기는 패자들에게 ‘나는 정말로 중요한 사람’. ‘대접받을 사람’ 취급을 받고자 하고, 그들이 그것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밀쳐내거나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공격한다.
전 남편을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유정은 평소 봉사활동에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피해자인 전 남편과 같은 대학교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5년 연애 후 결혼하였고, 봉사동아리에서는 보육원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는 일을 하였다. 텔레그램 성범죄자 조주빈도 체포 일주일 전까지도 봉사활동을 했다. 그의 직업은 위기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는 NGO 단체에서 장애인지원팀장이었다. 낮에는 보육원 아이들의 형이요 오빠였던 그가 미성년자들을 포함한 74명의 여성에게 온갖 협박을 하여 그들 스스로 성 착취 영상을 찍게 하고 공유했던 범죄자였던 것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파괴적인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의 이중성과 가면을 쓴 두 얼굴을 보게 된다.
이런 악성 나르시시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선한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태연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등쳐먹는 나르시시스트의 이중적인 두 얼굴을 파악하고 속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그들로부터 뒤통수를 맞게 될 것이다.
임석한목사(성복교회)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