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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주영하, 휴머니스트, 2018)
최근 TV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요리사들이 운영하는 식당마다 사람들이 몰리는 등 가히 신드롬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상급 요리사들이 특별한 규칙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는 설정과 이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탁월하다는 점, 거기에 요리사라는 전문직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마치 영화 <식신>의 등장인물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드라마틱한 서사를 보여주는 등 프로그램 성공의 요인은 차고도 넘친다.
나아가 프로그램 외적인 요소, 즉 현재 한국사회의 분위기도 이 신드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히 불공정과 불평등, 양극화와 세대 갈등이 만연한 이 사회의 현상은 요리사들의 서바이벌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각종 먹방과 배달음식, 맛집으로 둘러싸여 온갖 ‘먹을 것’에 열광하는 우리가 어떻게 <흑백요리사>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신드롬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렇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먹을 것’의 시대이다.
세상이 먹을 것과 먹을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사이에, 내가 인상 깊게 만난 책은 바로 민속학자 주영하 작가가 쓴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였다. 이 책은 ‘먹을 것’이 아니라 ‘먹는 방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왜 방바닥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밥을 먹을까? 한국인은 왜 국과 반찬을 함께 먹을까? 한국인은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할까?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나서, 그에 대해 역사적 사료를 추적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한국인의 식생활 방식이 다른 나라(문화)와는 어떻게 다른지, 혹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 멀게는 로마 시대와 인도의 식문화까지 섭렵하며 차근차근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때론 번뜩이는 일상의 풍경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때론 무거운 역사적 사료를 디테일하게 소개하는 책의 구성을 통해 가벼운 질문 하나가 이토록 오랜 역사와 심오한 문화를 전달하는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매일 같이 만나는 우리의 밥상 풍경이 얼마나 고유하고, 특별한 것인지를, 또 밥을 먹을 때마다 들어 올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의 서문은 한국에 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식탁에 붙어있는 호출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국인들은 찌개를 같이 먹는데, 그것이 불편하면 앞접시를 달라고 해야 한다는 등 외국인을 위한 여러 팁이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식당이 처음 경험하는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생소하게 느껴질지, 대리 체험하게 되는 이 글을 읽으며 나는 3년 전 라오스에 처음 왔을 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 때 라오스의 주식인 찹쌀밥을 손으로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난감해했고, 쿰쿰한 젓갈 국물 속에 ‘폭’하고 담겨있는 샐러드를 보면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 가장 생소했던 것은 원두막 같은 평상으로 된 식당(현지 말로는 ‘뚭’이라고 한다.)에 앉을 때, 원두막 위에 올라가서 또다시 목욕탕의자 같은 것을 놓고 앉는다는 점이다. 그냥 바닥에 앉으면 편할 것 같은데, 사람들은 꼭 그 의자에 앉는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향유하고 있던, 사소하면서도 고유한 한국의 식문화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간은 내가 이곳 라오스에서 만난 새로운 식문화의 기원을 상상해보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만난 식탁의 풍경 또한 책에 나와 있듯 오랜 시간과, 특별한 사연들을 만나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사실은 사뭇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라오스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으로써 주영하 작가의 방식으로 이들의 식문화를 연구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쇠로 만들어진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더욱 잘 알테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라오스의 일상에서 특별한 점을 찾아내고, 함께 그 의미를 공유하는 일이 이 땅에 사는 나그네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입버릇처럼 많이 건네지만 그것은 말뿐일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인에게 있어서 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이곳 라오스 사람들도 ‘언제 깽너마이(죽순국) 먹으러 와.’, ‘카오삐약(쌀국수) 한 그릇 같이하자.’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와 라오스의 문화가 각자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보편적인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크게 안도하게 된다. 때론 다르지만, 때로 같기에 우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작가는 인간은 ‘함께 식사’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하면서 말로만 밥 한번 먹자고 하지 말고, 꼭 같이 밥을 먹으라는 권유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라오스나, 한국이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함께 먹는 것이 아닐까.
라오스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이관택
이관택 라오스
